작심하고 만든 B급 영화… 기발한 상상력 철철

여기 인터넷 세대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괴작(怪作)이 있다. 기존 영화의 문법을 블랙홀로 보내버린 SF영화 '불청객'(9월 30일 개봉)이다. 제작비는 2000만원. "이 영화를 디시인사이드에 바친다"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우주에서 맹렬히 날아와 한국 영화계에 충돌한 운석이다. 고시준비생 진식(김진식)과 취업준비생 강영(원강영), 복학생 응일(이응일)이 함께 사는 자취방에 어느날 정체불명의 소포가 배달된다.

소포에서 나온 외계인 포인트맨은 세 사람의 수명을 갈취하려고 이들을 우주로 끌고 간다. 자취방이 통째로 우주를 떠돌다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위기에 처하자, 세 남자는 포인트맨과 결사항전을 벌인다.

이 영화는 작심하고 만든 B급 영화다. B급의, B급을 위한, B급에 의한 영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러닝타임 65분에 불과한 영화는 예전 영화 비디오에 수록돼 있던 불법비디오 경고 영상으로 시작한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로 시작하는 그 영상이다. 이윽고 '진달래'라는 영화의 예고편도 붙어 있다. "오빠, 왜 이렇게 늙었어요?" "군대 갔다 왔더니 아저씨가 되었어" 같은 대사가 이어진다.

본편 '불청객'이 시작되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느닷없이 나타난 포인트맨은 백수들의 수명을 빼앗아 시한부 삶을 사는 부자들에게 팔아먹고, 백수들에겐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영어로 말하는 포인트맨에게 "겟 아웃(나가)!"이라고 하자 포인트맨은 "그건 면접관이 너에게 하는 말 아닌가?"라고 대꾸한다.

자취방에 갇힌 채 우주 미아가 된 백수들은 우주에서도 미숫가루를 타 먹고,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위기에서 비디오 게임을 한다. 창문 밖에 은하계가 펼쳐져 있는데 책상에 앉아 법전을 읽고 있는 고시생 장면은 우스우면서 서글프다.

이응일 감독이 감독과 복학생, 포인트맨 1인 3역을 했고, 나머지 배우들은 실제 이 감독과 자취를 같이 하던 대학 선배들이다. 포인트맨 역 배우를 구하지 못해 이 감독이 내복을 파랗게 염색해 입고 수영 모자를 쓴 뒤 얼굴에 파란 물감을 칠하고 촬영했다. 총 제작비 2000만원 중 1500만원이 후반작업에 쓰였는데, 이런 B급 컴퓨터그래픽에 대부분 소요됐다.

황당하고 저급한 영화인 듯하지만, 마지막 자막 '고마운 분들' 명단에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에 이어 초현실주의 미술가 에셔와 마그리트, 수학자 펜로즈까지 등장한다. 이 모든 사람이 불가사의한 과학이나 예술에 천착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개봉은 한국 영화계에 막 배달된, 불가사의한 소포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