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울지마, 톤즈'

48년 삶, 향기 되어 관객 적셔

　 장면1. 손가락이 없는 뭉툭한 손,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사진을 어루만진다. 거친 입술로 입을 맞춘다.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아프리카 수단의 늙은 한센병 환자다. 반대로 사진 속의 동양인은 꽃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다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얼굴.... 그 환자는 세간살이 하나 없는 흙벽집의 가장 밝은 곳에 사진을 소중하게 보관한다.

장면2. 검은 피부의 청소년들이 '사랑해 당신을~'이라는 노래를 합창한다. 한국어 발음은 서투르고, 음정도 박자도 엉망이다. 노래하는 검은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한 소년은 "그가 보고싶다"고 운다. 아프리카 수단의 오지마을 톤즈의 브래스밴드 단원들이다. 그 아이들은 며칠 후 음악을 연주하며 마을을 행진한다. 행렬의 맨 앞에는 그 동양인의 사진이 있다. 병사도, 할아버지도, 소년도 그를 추모한다. 아프리카 한센병 환자와 검은 피부의 소년들이 한 동양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그의 삶을 추모하는 이 색다른 광경은 무엇 때문일까. '울지마, 톤즈'(연출 구수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수단의 오지마을 톤즈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돌봤던 고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담담하게 그린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작고 소박하다. 이 신부가 선종한 후에 그의 삶을 정리했다. 어머니, 톤즈 마을 사람들, 벽안의 신부 등을 인터뷰하고, 고인이 톤즈에서 남긴 기록을 통해 삶을 재구성했다.

이 신부는 부산의 가난한 집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났다. 홀어머니는 자갈치 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자녀들을 키웠다. 이 신부는 의대에 진학했고, 모든 가족이 기뻐했다. 편안하고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신부가 됐다. 가난과 내전으로 얼룩진 '절망의 땅' 톤즈 마을에 와서 병든 환자들을 치료하고, 성당보다 먼저 학교를 세우고, 음악을 가르쳤다. 종족간 내전으로 총상 입은 군인들도, 한센병 환자들도 직접 치료했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은 지구촌에서 가장 궁벽한 톤즈 마을에 희망의 싹이 되었다. 휴가차 귀국했다가 말기암 진단을 받았고, 올해 초 불과 48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영화는 톤즈 마을 사람들의 육성과 고인이 남긴 삶의 단편들로 이뤄져 있다. 구성이나 만듦새는 다소 거칠지만, 영화가 남기는 울림은 크다. 이 신부는 생전에 '향기'에 대해서 말한다. 어린 시절 마을 성당의 신부, 수녀님들과 어머니의 헌신적인 삶,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돌보라던 성경의 한 구절이다. 이제는 고인의 삶이 향기가 되어 관객의 마음을 적신다. 영화의 반향은 깊다. 이례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시작은 미미했다. 지난달 9일 13개관에서 개봉했다. 6일만에 2만5000명을 동원하며 입소문을 탔고, 추석 연휴를 지나면서 6만 명을 넘어섰다. 상영관도 54개로 늘어났다. 종교적인 색채가 특별히 강하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올 가을에는 유난히 감성 타큐멘터리가 많다. '기적의 오케스트라-엘 시스테마'는 지난 8월 개봉, 2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대낮에 총격전이 벌어지는 베네수엘라 빈민촌 아이들에게 음악으로 삶의 희망을 전한 이야기다. '나를 닮은 얼굴'은 입양으로 헤어진 후 30년 만에 만난 모자의 안타까운 삶을 그린다. 우리가 잘 모르는 입양 이후의 삶을 들려준다. 태미 추 감독이 입양아 출신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들의 목소리는 작다.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소리높여 외치지 않는다. 극적인 재미도 덜하다. 그러나 삶에 대해, 삶의 자세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10월, 한 편의 작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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