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절임배추 소비자들과 신뢰 지키려 싸게 팔아요"

"올해만 배추농사를 짓는 게 아니잖아요?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그동안 절임배추를 구입해 준 소비자들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는 고통을 분담해야죠."

최근 배추 한 포기 값이 1만원을 훌쩍 넘기면서 정부가 중국산 배추 대량 수입을 결정하는 등 김장철을 앞두고 도시 소비자들이 커다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충북지역 절임배추 생산 농가들이 소비자와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시세의 5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절임배추를 판매해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괴산군 절임배추생산자협의회는 최근 회의를 열어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시골 절임배추'를 20㎏ 1상자당 2만5000원에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1상자에 8~10포기의 배추가 들어가고 소금과 인건비 등을 감안할 경우 10만원 이상 받을 수 있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공짜 수준 가격이다.

농민들이 이처럼 낮게 가격을 책정한 것은 그동안 거래했던 소비자들에게 배추값 폭등에 따른 부담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농민들은 오히려 미안감을 표시했다. 2008년부터 상자당 2만원을 받았는데 25%인 5000원을 올렸기 때문이다. 협의회는 상자당 2만원을 받을 경우 배추 생산농가들이 중간상들에게 밭떼기로 넘기는 일이 발생할 우려가 크고 인건비 상승으로 절임배추 생산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어나 괴산절임배추 생산조직이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가격을 최소한의 범위에서 올린 것이다. 김갑수 회장은 "여러 가지 여건으로 부득이 작년보다 가격을 인상하게 돼 괴산절임배추를 애용하는 소비자들에게 죄송하다"며 "앞으로도 절임배추 가격을 결정할 때 소비자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의 소비자들이 폭발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괴산군청 인터넷 서버가 한때 마비되고 괴산 절임배추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순위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괴산군은 밀려드는 문의전화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군청 홈페이지 초기 화면을 절임배추 작목반과 연락처로 꾸며놓았다. 농가와 작목반 등에도 주문 예약전화가 폭주하면서 괴산 농산물을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인 '괴산장터'에는 절임배추 품절 안내문이 오르기도 했다.

괴산군은 올해 이상기온과 재배면적 감소, 잦은 비로 인한 배추 생육 부진 등으로 작년보다 생산량이 4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관내에서 784농가, 140개 작목반이 괴산절임배추 사업에 참여해 모두 118만 상자를 생산했으며,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괴산군에 이어 청원군 미원면의 '청원생명 절임배추 작목반' 농가들도 절임배추를 작년 수준인 1상자당 2만5000원에 공급하기로 했다. 작목반 윤창한 대표는 "4~5년 동안 거래했던 기존 고객들에게는 작년 가격에 공급하기로 했다"며 "고객들에게 갑자기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이같이 결정했지만 배추 작황이 좋지 않아 기존 고객 외에는 판매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괴산이 지역구인 민주당 정범구 국회의원은 1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괴산 절임배추 사례를 소개하면서 "농산물 유통구조를 괴산군처럼 농민과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