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재능을 나눕시다] 갑자기 숨진 아들의 대학 학비… 5년째 노숙인들의 끼니가 되다

화장(火葬)으로 아들을 보냈지만, 그리움은 떠나지 않았다. '평생 속 한 번 썩인 적 없었는데…', '정말 잘생긴 우리 아들이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부부를 찾아온 아들 친구는 뜻밖의 말을 전했다. "재성이는 참 좋은 친구였어요.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모아 형편이 어려운 친구 학비를 대줬어요."

부부는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좋은 일을 한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김씨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아들 뜻을 잇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아내와 약속했다"며 그때부터 아들에게 학비와 생활비로 부쳐주던 돈(한 달 200여만원)을 좋은 일에 쓰기로 했다.

부부는 채소가게를 하던 시장 인근의 노숙인·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를 만들기로 했다. 원주·수원·인천의 무료급식소를 찾아가 급식소 운영·배식 방법 등을 배웠다. 부부는 2006년 10월 11일 채소 가게를 식당으로 바꾸고 아들 이름을 딴 '재성이네 나눔쉼터'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처음엔 주변 사람들이 "노숙인 냄새 맡아보면 두 달도 못 간다"고 비아냥거리거나 "노숙인들이 왔다갔다하면 장사에 방해된다"며 투덜댔다. 밥을 먹으러 와서 행패를 부리거나 '돈을 달라'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부부가 정성을 다하자 주변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졌다.

급식소에 조금씩 후원하겠다는 사람도 나타나고, 일손을 거들겠다며 자원봉사자들도 찾아왔다. 처음엔 '5일에 한 번' 할 계획이었던 급식봉사는 1년 만에 '1주일에 다섯 번'으로 늘었다. 김씨는 "아들과 한 약속(생활비·학비)에 주변 도움이 더해져서 급식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또 어려움이 생겼다. 시청에서 시유지인 시장 일부를 헐고 '다목적광장'을 만들어 급식소를 하던 가게를 철거하게 된 것이다. 김씨는 "그때 '4년 정도 했으니 그만 할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여기 찾아오는 분들이 눈에 밟혀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부부는 인근 시장에 다시 세를 얻었다. 하지만 나눔을 하면서 생업이던 채소장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공간을 새로 얻을 여력이 부족했다. 급식소 규모가 전보다 훨씬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부는 "우리가 넉넉하면 놀러다니고 싶을 것 아니냐"며 "오히려 지금의 부족함이 나눔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점심 급식이 끝나면 공책을 꺼내 그날의 메뉴와 자원봉사자, 주변의 후원내용, 급식자 수 등을 빼곡히 정리한다. 주변에서 도와준 분들의 정성을 잊지 않기 위해 급식을 시작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점심을 드시는 분들과 도와주신 분들 덕에 지금은 아들을 먼저 보낸 슬픔을 많이 잊은 것 같다"고 말하는 정씨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다.

●조선일보는 창간 90주년을 기념해 한국자원봉사협의회·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공동으로 '재능을 나눕시다' 캠페인을 펼칩니다. 이 캠페인은 자신이 가진 재능과 기술, 지식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기부 운동입니다. 재능을 나누고자 하는 기업이나 사회단체, 개인 모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도움을 원하는 개인·단체도 접수를 받아 재능기부자와 연결해 드립니다. 재능나눔 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기부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행정안전부·보건복지가족부·여성부·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합니다.

▲캠페인 홈페이지 www.volunteerkorea.or.kr
(http://event.chosun.com 또는 재능을나눕시다.org)

▲문의: (02)3210-1730~1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재능나눔 기부: 하나은행 255-287107-00105 (예금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승자독식 사회 바로잡을 가장 긍정적인 대안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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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정오 충북 충주시 충의동 재래시장 한쪽의 33㎡(10평) 남짓한 낡은 식당 앞에서 노란색 번호표를 든 노인 30여명이 북적이고 있었다. 입구에 선 식당 주인 김창열(58)씨가 "40번 어르신까지 들어오세요"라고 외치자 노인들이 김씨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안에서는 김씨의 아내 정정자(56)씨가 밥과 반찬을 식판에 담고 있었다. 정씨는 한 노인 차례가 되자 "아저씨는 식사를 많이 자시니까 이 정도는 담아야 한다"며 밥을 식판에 수북하게 담았다.

이 부부(夫婦)는 2006년부터 이곳에서 노인·노숙인을 위한 무료 점심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5일장이 서는 날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1주일에 5일 문을 여는 이 급식소엔 하루 평균 70여명이 찾는다.

급식소를 처음 열기 두 달 전인 2006년 8월 4일 부부는 막내아들 재성(당시 25세)씨를 잃었다. 평소처럼 채소장사를 하던 김씨에게 오전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를 건 아들 친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재성이가 병원에 있다"고 했다. 부부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들은 이미 심장마비로 사망한 상태였다. 아들은 평소 병도 없었고 그달 말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아들이 아침에 갑자기 하숙집에서 쓰러져 숨졌다는 것이다. 부부는 아들 이름을 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