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통일 후 재산권 분쟁 쏟아져… 이에 대비하면 통일 비용 줄 것"

"분단에 따른 소모 비용, 통일 이후의 국가적 가치 상승을 생각하면 비용 때문에 통일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자유를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법무부와 서울대 등이 주관한 '독일 통일 20년과 한반도 통일' 학술대회에 참석한 지그프리드 브로스(Siegfied Broβ·64) 전(前) 독일연방헌법재판관은 4일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통일은 모든 사람이 잘살 수 있는 방향으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최고 법률심판기관인 연방헌법재판소는 16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돼 있다. 브로스 재판관은 12년 임기를 마치고 지난달 말 퇴임했다. 그는 "한국도 통일이 이뤄지면 각종 법률 분쟁이 쏟아질 것"이라며 "이에 대비하면 통일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은 통일 이후 토지소유권이나 국영기업 인수권 등에 관한 분쟁, 동독의 인권범죄 관련 소송이 폭증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됐던 것은 토지반환 정책이다. 통독 정부가 동독이 40년 전 몰수했던 토지를 원소유자에게 반환한다는 원칙을 세우자, 소유권을 다투는 소송이 봇물처럼 쏟아진 것. 이것이 동독 지역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요인이 됐고, 동독 지역의 시장시스템은 급속히 붕괴됐다.

브로스 전 재판관은 "수십년 분단된 상황에서 과거의 소유권을 찾아주려고 나서면 국가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며 "그로 인한 갈등 비용은 어느 정부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가가 체계적으로 토지를 관리·개발하되, 소유권이 명백하거나 꼭 필요한 경우에만 금전으로 보상하는 방법이 낫다"고 했다.

그는 또 독일이 급격한 흡수통일 후 겪은 후유증을 언급하면서 "한국은 통일을 성취하더라도 북한 경제가 일정 수준에 올 때까지 주민 이동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헌법상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통일 이후 한시적으로 헌법을 고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통일세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으나, "특별한 목적으로 걷는 세금은 독일에서도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브로스 전 재판관은 "독일은 완벽주의 때문인지 통일 관련 법률을 너무 자세하게 만들어 오히려 분쟁을 유발하기도 했다"며 "한국은 그렇게 하지 마라"고 조언했다. 큰 틀에서 원칙을 정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개별 사례를 모두 예측하긴 어렵기 때문에 과도한 법규정은 오히려 통합에 방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