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을 가르는 눈빛, 영원을 꿈꾸는가

한국 근대 조각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권진규(1922~1973)의 작품 40여점을 볼 수 있는 전시가 11일부터 열린다. 이번 전시는 하이트문화재단(이사장 박문덕)이 그동안 모아온 미술품을 '하이트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일반에게 공개하기 위해 본사에 전시공간을 마련하면서 개관전으로 마련됐다.

〈탈주〉라는 이름의 전시에는 〈남자 흉상〉〈자소상〉 등 권진규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조각과 드로잉 등이 나왔다. 권진규의 작품은 테라코타와 건칠(乾漆)이 많아 전시가 되더라도 근접 관람이 어려운데 이번 전시는 상당히 가깝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탈주〉라는 주제는 작품에 치열하게 몰입함으로써 현실을 넘어 영원을 꿈꿨던 권진규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권진규는 생활고와 자신의 작품세계를 몰라주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을 상징적인 '날개'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는 권진규의 1960년대 이후 작품을 중심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같이 지난 2월까지 덕수궁에서 열렸던 권진규전(展)에 나오지 않았던 작품이 포함돼 눈길을 끌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김현숙씨는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는 교회의 요청을 받고 제작했는데, 실물을 본 교회가 인수를 거부했다"며 "그리스도가 벌리고 있는 두 팔은 날개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이트문화재단은 권진규 유족과 협의해 권진규미술관 건립에 나설 예정이다.

'하이트 컬렉션' 개관전은 또 서도호의 대형 설치 작품 〈인과(因果)〉를 함께 전시한다. 사람을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로 제작해 11만여개를 쌓아올린 작품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연결돼 인간의 끊을 수 없는 인과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하고 있는 설치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설치작품과 함께 서도호의 회화작품 〈카르마〉도 전시되고 있으며, 〈인과〉를 제작한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은 영상물도 상영된다. 8m에 이르는 서도호의 설치작품을 위해 지하층부터 지상 2층을 관통하는 전시공간을 새로 만들었다.

하이트문화재단은 "재단이 그동안 꾸준히 관심을 갖고 모아온 국내외 작품이 많다"며 "전시공간이 마련된 만큼 지속적으로 이를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4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 본사에 마련된 전시공간에서 열린다. 관람은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토요일·일요일·공휴일은 휴관이다. (02)3219-0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