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잘나가는 증시, 걸림돌은 없나… 3大 불안요소 점검

한국 증시가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며 6일 코스피 지수 1900선을 넘었다. 올해 8월까지 우리 증시가 박스권에 갇혀 허덕일 때만 해도 이렇게 급속한 상승세를 예견한 전문가는 별로 없었다. 2년 3개월간 1500~1800구간을 맴돌던 코스피지수는 일단 1800선을 돌파하자 불과 19거래일 만에 1900선을 돌파했다. 이 같은 급반전의 중심에는 외국인이 있다. 외국인은 최근 16일 연속 순매수세를 이어가며 5조3797 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여 지수 상승을 견인했다.

최근 상승장은 돈의 힘으로 올라가는 전형적인 유동성 장세다. 이 때문에 경기선행지수가 하락하고 기업실적이 둔화세에 접어들었는데도 주가는 상승하는 기(奇)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주식과 채권이 지금처럼 장기간 동반 강세를 보이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이러한 유동성 장세가 나타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선진국에 더블딥(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다 다시 침체에 빠지는 것) 우려가 나타나면서 금리 인상 등 출구전략이 당분간 물 건너 갔다. 또 미국·일본 등 주요국들이 자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돈을 찍어내 통화 가치를 낮추고 있다. 이와 동시에 신흥국들이 견조한 경기 회복세를 이어가자 막대한 선진국 자금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증시 전문가들은 이달 안에 코스피지수가 2000을 돌파할 수도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면 한국 증시가 최근 단기 과열 양상을 띠고 있는 데다 크게 세 가지 불안요소를 안고 있어 조만간 상승세가 둔화되거나 단기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환차익 노린 단기성 외국자금?

증시의 첫 번째 불안 요소는 최근 상승세가 오로지 외국인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관 중에는 연기금이 주식을 사들이고 있지만 외국인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2007년 강세장의 주역이었던 투신(投信)은 연일 계속되는 펀드 환매에 자금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고, 코스피지수 1800~1900대에 아직도 14조원가량의 펀드 환매 물량이 대기해 있다.

외국인이 한국 증시로 몰려오는 이유는 OECD 국가 중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데다 기업 실적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환(換)차익이나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핫머니(hot money)도 상당히 가세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요국들이 인위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는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G20 정상회의 주최국인 한국 정부는 외환시장에 선뜻 개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9월의 외국인 매수세는 룩셈부르크와 네덜란드 등 조세회피지역이 주도했다. 8월에는 각각 220억원과 2403억원을 순매도했던 두 나라는 9월 들어 매수세로 돌아서 5000억원 이상을 순매수했다. 이에 대해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에 조세회피지역 투자자의 성향을 살펴보면 연속 순매수 기간이 보통 1개월에서 길어도 2~3개월 정도"라며 "외국인의 대규모 순매수에 대한 기대감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지는 1100원까지 떨어지면 환차익을 노린 매수세도 한풀 꺾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 실적 둔화로 저가(低價) 매력도 줄어

증시 상승세의 두 번째 걸림돌은 올해 '사상 최대' 행진을 이어온 기업 실적이 3분기를 정점으로 한풀 꺾인다는 점이다. 금융정보제공회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00대 주요 상장사의 영업이익은 올 3분기 25조1624억원을 정점으로 4분기 22조6679억원, 내년 1분기 23조5985억원 등으로 점차 줄어들 전망이다.

이처럼 기업 이익은 정체 또는 하향세인데 반해 주가는 크게 상승하면서 한국 증시의 '저가(低價) 메리트'도 상당히 희석됐다. 한국 증시의 주가수익배율(PER)은 지난달 8.7배 수준에서 최근 9.1배 수준으로 높아졌다. 주가수익배율이 낮을수록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주가수익배율은 중국(12.2배)보다는 여전히 낮지만, 브라질(10.5배)과 비슷하고 러시아(5.9배)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민상일 이트레이드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 풍부한 유동성, 중국에 대한 기대감 등의 호재는 이미 주가에 반영됐고 실적 시즌이 시작되면 실적 하락에 대한 고민이 주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하면서 코스피지수 1900을 돌파한 이후에는 증시의 상승 탄력이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동성 장세, 한국 경제에 독(毒) 될 수도

외국인에 의한 유동성 장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경기 침체를 암시하는 지표가 나오면 전 세계 증시가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양적 완화를 부추길 호재로 인식할 만큼 낙관론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경제 전체로 보면 이러한 유동성 장세를 반길 일만은 아니라는 우려도 있다. 넘치는 돈이 결국 석유 및 원자재 투기 수요를 부추겨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을 밀어올리고, 원화 강세가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박경민 한가람투자자문 대표는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 자금 덕분에 지수가 앞으로도 많이 오를 수 있지만 한국 경제 전체로는 불길한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면서 "유가(油價)가 빠르게 올라 인플레이션 조짐이 높아지면 다시 통화 긴축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한국 증시도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