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조국의 아픔' 함께한 白衣천사 100년

지난 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간호학과 학장실에 60년 세월을 뛰어넘은 선·후배 간호사 6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연세대 간호대 47학번 김근화(80)씨와 49학번 하영수(77) 이화여대 명예교수, 61학번 강규숙(68) 연세대 명예교수가 차례로 자리에 앉자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안지현(27·02학번)씨와 4학년(07학번) 정이랑(22)·이여운(22)씨가 밝게 인사했다. 7일 세브란스병원 은명대강당에서 열리는 간호사 배출 100주년 행사에 앞서 간호대가 마련한 선·후배 모임이었다.

1906년 세브란스 간호부 양성소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연세대 간호대는 1910년 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100년 역사를 가진 연대 출신 간호사들은 6·25전쟁에 참전하고 1960~1970년대는 파독(派獨) 간호사로 활약했다.

이날 참석자 중 최고령인 김근화씨는 국립마산요양원에서 실습하던 60년 전 6월 25일을 잊지 못한다. 김씨는 "5일만 지나면 실습을 마치고 7월 초 졸업할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북에서 남침해 국군이 후퇴하고 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지"라고 했다.

"며칠 후 정말로 국군이 마산까지 밀려왔어. 교수님이 '간호장교 손이 모자라니 실습생들이 좀 도와야겠다'고 해서 모두가 부상병 치료에 투입됐지."

헌 군복을 입고 환자를 돌보던 김씨를 보고 부상병들이 간호장교로 착각해 '장교님 살려주시오'라며 울먹였다고 한다. 김씨는 그해 8월 자원입대해 강원도 양구에 있는 제6이동외과병원으로 갔다. 병원은 지뢰를 밟아 다리가 절단된 환자와 총상 환자로 아비규환이었다. 그는 "피고름이 범벅된 이불에 누운 환자들을 돌보느라 매일 녹초가 됐지만, 국군이 서울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힘을 냈다"고 말했다.

김씨는 "서울에 남아있던 간호대 동창생들은 1950년 6월 28일부터 인민군 부상자들이 몰려오면서 곤경에 처했다"며 "국군 환자들에게 일반인 환자복을 입혀 탈출시켰지만, 탈출에 실패한 국군 중환자들은 결국 운동장에서 인민군에 총살당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김씨 동창생 45명 중 17명은 간호장교가 됐다. 김씨는 전쟁이 끝난 1955년이 돼서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하영수 교수는 입학한 지 1년도 채 안 돼 학교 기숙사에서 전쟁 발발 소식을 들었다. "교수님과 재학생들이 '세브란스병원 구호반'을 만들어 밀려드는 환자들을 돌봤어요. 하지만 신입생인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수돗가에서 양동이로 물을 받아다가 출혈이 심한 부상병들에게 먹였습니다." 하 교수는 수많은 부상병에게 물을 길어 먹이다 하루해가 졌다고 회고했다. 전쟁 통에 하 교수의 동창생 30명 중 8명만 졸업했고, 22명은 행방불명됐다고 한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던 4학년 정이랑씨는 "남학생인 제가 봐도 여학생 신분으로 전쟁에 선뜻 참여했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되질 않는다"고 놀라워했다.

이날 참석한 강규숙 교수는 '파독 간호사' 출신이다. 강 교수는 1966년부터 6년여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병원 등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강 교수는 "우리 간호사들이 평일에 초과근무를 하고 주말에도 나오자 독일 간호사들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질시한 적도 있었다"며 "낯선 동양인 간호사지만, 워낙 정성껏 돌봐주니 독일 환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했다.

당시 강 교수 월급은 750마르크(당시 돈 40여만원) 정도로, 한국에서의 월급 4만원의 10배였다. 강 교수는 "번 돈은 한국의 부모님께 송금했다"고 했다. 1960~1970년대 독일에 간 간호사는 1만명이 넘는다.

연세대 교정으로 자리를 옮겨 걷던 이여운씨가 "100년 역사를 지닌 연세대 간호대 출신인 게 자랑스러워요. 100년 뒤엔 어떤 역사가 남을지 궁금합니다"고 했다. 선배들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100년 역사는 너희가 만드는 거란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