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米壽 기념으로 5000만원 기부한 할아버지

6일 정오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연회장에서 이용호씨의 미수연(米壽宴·88세 생일잔치)이 열렸다. 양복을 말끔히 입은 이씨는 건강한 모습으로 손님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음력 생일(1923년 9월 2일)을 3일 앞둔 이날 생일잔치를 연 이씨는 며칠 전 5000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 의사를 전했다. 이씨의 자녀와 지인들도 잔치 하루 전에야 기부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이씨는 "대수롭지 않은 기부에 많은 관심을 받아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 갖고 있던 것 일부를 나눴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씨는 1974년 25년간 일한 세무공무원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서울 강남에 땅을 샀다. 이씨는 "당시 서울 강남에 땅이 잘 팔리지 않아 평당 1만8000원 하던 땅을 30% 할인된 값으로 샀다"며 "그 자리에 건물을 지어 임대업을 하던 게 땅값이 올라 돈을 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운이 좋게도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돈을 모을 수 있었다"며 "그럴수록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 기부를 해왔다"고 말했다.

이씨의 선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경남 거제 출신인 이씨는 20년 전 형편이 어려운 고향의 중·고등학생들에게 써달라며 당시 2000만원을 거제도 교육청에 기부했고, 이후 매년 중·고등학생 10명을 선발해 1년치 등록금을 주고 있다. 그리고 수재가 나거나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얘기를 들을 때마다 틈틈이 각종 단체나 언론사를 통해 습관처럼 성금을 내왔다. 이씨는 "얼마를 기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그때그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을 아꼈다.

외손자 한지훈(40)씨는 "외할아버지는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는 분"이라며 "남들 다 갖는 명품 하나 없고, 오늘 입은 양복도 입은 지 10년이 넘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 사무실에는 30년 된 라디오와 20년 된 에어컨이 계속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