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 2002년부터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지만...

7일 노벨문학상을 수상에 실패한 고은 시인은 지난 2002년 이후 해마다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혔다. 시인은 어느 해에는 침묵을, 어느 해에는 탈락소감을 밝히며 ‘노벨의 계절’을 보냈다.

가을만 되면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에 대해 그는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은 나에게 짐이 된다”면서 “다만 그 시기가 지나가면 관심이 사라지니 잘 견디면 되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처음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외신에 등장한 것은 2002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각광’을 받지 못했다. 당시 국내 언론은 ‘고은씨도 노벨문학상 물망에 올랐다’면서도 그 해는 여성작가의 차례가 올 것이라고 짧게 전달했다.

고은 시인이 언론의 관심을 뜨겁게 받은 해는 2005년이다. 로이터 통신은 한국의 고은 시인을 두 번째로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꼽았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당초 예상된 10월 6일보다 한 주 늦어진 13일로 되면서 기대감이 높아졌다.

언론들은 “1990년대 이후 왕성한 해외활동을 펼쳐온 고은 시인이 2000년 이후에는 한 해에 서너 달은 해외에 있었다 할 정도로 우리 문학 알리기에 주력해 왔다”고 일제히 전했다. 발표 당일에는 100여 명의 취재진이 경기 안성시 고은 시인의 집 앞에 진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해 노벨문학상은 영국 극작가 해럴드 핀터(Harold Pinter)에게 돌아갔다. 고은 시인의 부인 이상화 중앙대 영문과 교수는 “선생님은 초연한 모습”이라고 시인의 표정을 전했다. 이날 고은 시인의 휴대전화는 온종일 통화가 되지 않았다. 발표가 난 뒤에도 그는 취재진 앞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 이듬해 가을에도 고은 시인의 집 앞은 어김없이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그 해에는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이 수상자가 됐다. 고은 시인은 하얀 종이에 인쇄된 짧은 글을 통해 소회를 밝혔다.

그는 “오늘은 나의 날이 아닌듯 합니다”라며 “타인의 향연을 축하합니다”고 썼다. 이어 “지금 한반도는 이겨내야 할 시련을 맞고 있다”며 “내 문학의 정진은 계속될 것”이라고 변함없는 문학에의 열정을 밝혔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2008년은 고은 시인의 수상 가능성이 21대 1로 낮게 점쳐졌다. 이에 따라, 고 시인의 자택 앞에는 여느 때보다 적은 30여명의 취재진만이 몰려 수상 소식을 기다렸고, 고 시인도 두문불출했다.

‘1996년부터 시 문학계에서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고 기대감이 높아졌던 작년에도 낭보는 전해지지 않았다. 연작시 ‘만인보(萬人譜: 만인의 족보)’를 탈고한 지난해에 고 시인은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노벨상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시를 쓸 때에는 백지와 같은 순결함이 중요하다고 했다.

“시에 너무 고도의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시 정신에 너무 고취되지 말고, 거기에 항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로 견딜 수 없어 나오는 것이지요. 종달새는 하루에 3000번 울고, 개구리도 울고, 송아지도 우니, 시인도 우는(鳴) 겁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앞서 AP통신이 고은 시인을 수상 가능성이 큰 후보로 거명되고 있다고 전하면서 수상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이날 오후 8시(한국시각) 페루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로 발표됐다. ‘절로 우는 시인’은 다시 한번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