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씨 별세

황장엽(87) 전 북한 노동당 국제비서가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평소 새벽 반신욕을 하는 황 전 비서가 9시 30분쯤까지 응접실에 나타나지 않아 자택 경호를 맡은 경찰관이 비상 열쇠로 욕실 문을 열었더니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서 황 전 비서가 호흡이 멈춘 채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자체 감식팀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대 법의학 교수 등과 함께 황 전 비서의 시신을 합동으로 검안한 결과 겉으로 볼 때 상처가 없고 자택에 침입 흔적이 없었다"며 "특별한 타살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보아 고령으로 인해 자연사(自然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11일 부검결과를 브리핑할 계획이다. 경찰은 지난 4월 '황장엽 암살조'가 구속된 이후 황 전 비서를 24시간 밀착 경호해왔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의 대부'로 불리던 황 전 비서는 1997년 2월 12일 "인민이 굶어 죽는데 무슨 사회주의인가"라며 베이징(北京)의 한국 총영사관을 통해 망명했다. 당시 북한에선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은 상황이었다. 이후 그는 13년8개월 동안 김정일 정권을 신랄하게 공개 비판했다. 최근에는 후계자 김정은을 '그깟 놈'이라고 부르며 3대 세습에 대해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은이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등극 행사를 하던 날(10일) 눈을 감았다.

황 전 비서는 사석(私席)에서 북에 남겨둔 아내(박승옥)와 아들·딸(1남3녀) 등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을 자주 표현했다고 한다. 황 전 비서의 한 측근은 "북한에 있는 황 전 비서의 가족들이 남한에서 조문(弔問)할 수 있도록 북한 당국에 인도적 차원의 요청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 전 비서의 북한 가족 중 일부는 사망했고, 일부는 정치범수용소 등으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영삼 전 대통령이 황 전 비서의 장례위원회 명예위원장을 맡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장례위원회는 장례를 5일장으로 치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비서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