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법정 아닌 축구장에서 만난 판사님

후반전 종료가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전반전 두 골을 여유 있게 앞서다 후반 들어 세 골을 내준 최악의 상황. 마음이 급하다 보니 패스도 자주 끊겼고, 스로인(throw-in)을 하려다 손에서 공이 떨어지는 실수까지 나왔다. 붉은 유니폼을 입은 로뎀FC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뛰었고, 상대편의 수비 실수로 나온 공을 하승완(15)군이 놓치지 않고 가볍게 차넣었다. 3대3. 극적인 무승부였다. 눈앞에서 승리를 놓친 법구회 선수들은 잠시 허탈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다가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9일 강원도 춘천시 송암스포츠타운 종합운동장. 이날 홈팀인 '법구회'는 춘천지법 소속 판사와 법원 직원들로 구성된 축구동호회로 전국 법원대회에서 매년 화려한 성적을 거둬온 전통의 강호다. 이에 맞선 원정팀 '로뎀FC'는 충북 제천 로뎀청소년학교에 다니는 10대 소년들이 주축. 로뎀청소년학교는 오토바이 등을 훔치거나 또래들로부터 금품을 빼앗는 비행 등을 저질러 소년보호재판에서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들을 6개월~1년 정도 맡아 가르치는 위탁기관이다.

인성교육과 체력단련을 위해 시작한 축구 수업이 아이들에게 큰 효과를 보이자 아예 2007년에는 '로뎀FC'라는 정식 축구단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로뎀FC와의 초청경기를 구상하고 추진한 사람은 춘천지법 소년부 심재완(35) 판사다.

그는 "재판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상냥한 어른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소년재판에 오는 아이 중에는 가정에서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딱딱한 법정과 높은 법대에서 아이들과 만났지만, 그런 어른들이 알고 보면 언제든지 함께 어울리는 평범한 아버지·삼촌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이날 법구회에서는 로뎀FC에 축구공 등 운동 장비를 선물했고, 로뎀청소년학교에서는 고구마와 고춧가루를 선물했다.

로뎀청소년학교 아이들은 이날 축구 장비 말고 또 값진 선물을 얻었다. 법구회 소속인 춘천지법 판사 및 직원들과 1대1로 멘토(mentor)를 맺은 것. 새로 인연을 맺은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위탁보호기간이 끝나 로뎀학교를 떠나 가정으로 돌아간 뒤에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며 조언자 역할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를 해온 손모(17)군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박지성 형 같은 최고의 미드필더가 되고 싶었어요. 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한 발 가까워진 것 같아요. 절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으니까요. 2018년 월드컵을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