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재능을 나눕시다] 블로그 한 줄에 멘토 10명이 모였다

"오직 저만의 도자기를 만들어 멋진 전시장에서 전시회를 열고 싶어요."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살레시오 근로청소년 회관 지하 강당에서 한승민(17·가명)군이 다양한 도자기 사진과 전시장 사진을 붙인 A3용지 크기의 도화지를 내보이며 말했다. 한군은 "잡지에서 오려 붙인 사진이지만 여기에 내 꿈이 담겨 있다"며 도화지를 보물처럼 껴안았다.

한군은 2년 전 가정법원에서 '6호 처분'을 받고 이곳 근로청소년회관으로 왔다. 6호 처분이란 범죄를 저지른 만 19세 이하 소년범을 6개월간 아동보호치료시설로 보내 치료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다. 백준식 관장은 "대부분 오토바이를 훔치거나 폭행 등의 범죄를 저질러 법원을 거쳐 이곳에 온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절도를 저지르고 2년 전 이곳에 온 한군은 6개월간 도예 치료 교육을 받았지만, 가정 형편 등으로 인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1년 넘게 이곳에서 살고 있다.

이날 한군과 같은 처지에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10명의 멘토(mentor·조언 해주는 사람)가 찾아왔다. 로스쿨 재학생, 은행원, 초등학교 교사, 스노보드 강사, IT(정보기술) 벤처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다. 모두 가출·절도·흡연으로 방황하던 청소년들을 바른길로 이끌어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겠다고 자청한 사람들이다.

서로 얼굴도 모르던 멘토들을 모은 사람은 김수영(30)씨다. 김씨는 다국적 석유 회사 '로열 더치 쉘'에서 마케팅 담당 매니저로 일하며 억대 연봉을 받고 있다. 김씨 역시 중학교 시절에는 '문제아'였다. 김씨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 사업실패로 집안 형편이 기운 뒤 마음을 잡지 못하고 겉돌았다"며 "가출과 폭주, 음주, 흡연 등 안 해본 게 없었고, 결국 중학교도 자퇴했다"고 했다. 그런 김씨는 마음을 다잡은 뒤, 검정고시로 상업고교에 진학했고 연세대(영문학과)와 골드만삭스를 거쳐 지금의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김씨는 "내게도 괜찮은 미래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며 "남이 풀던 문제집을 얻어다가 지우개로 지워가면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달 초 자신의 블로그에 "꿈을 잃지 않고 사는 아이들을 위해 힘이 돼 줄 멘토를 찾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곳 살레시오 근로청소년회관 아이들에게 멘토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올해 초 자신이 출간한 책의 인세 10%를 이곳에 기부하고 있다. 김씨는 "어린 시절에 나를 붙잡아주는 사람이 없어 방황했던 경험을 떠올려 아이들에게 멘토링을 해줄 사람들을 찾았다"고 했다.

이날 모인 멘토 10명은 김씨의 블로그를 보고 스스로 김씨에게 연락을 한 사람들이다. 이지영(28·한양대 로스쿨 재학생)씨는 "나도 중학교 때 학교에 가지 않고 겉돌던 적이 있었는데, 내가 이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멘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참여했다"고 말했다. 곽나빈(28·삼성중공업)씨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함께 아이들 멘토가 되기 위해 전날 거제도에서 올라왔다. 곽씨는 "뭘 해줘야 할지 고민을 했는데, 막상 만나본 아이들은 자신의 얘기에 귀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다"며 "남편과 함께 좋은 멘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뻐했다.

새롭게 형·누나를 만난 10명의 청소년은 가수·바리스타·스타일리스트·도예가 등 자신이 품고 있는 꿈을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멘토로 참여한 10명의 직장인은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전하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이들은 서로에게 잘 맞는 사람들을 정해서 10쌍의 '멘토-멘티(mentee·조언 받는 사람) 커플'이 될 예정이다. 살레시오 근로청소년 회관 안정숙 사회복지사는 "아이들이 저렇게 신이 난 걸 보니 형·누나들에게 마음을 열고 있는 것 같다"며 "방황과 좌절을 거듭했던 우리 아이들이 그동안 잊고 살았던 꿈을 되찾을 수 있는 좋은 길잡이들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