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소 끌고 전국 여행… 牛시장 갔더니 정말 울더군요"

한국 리얼리즘 영화를 대표하는 임순례(50) 감독과 배우 공효진(30)을 만났다. 두 사람은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11월 4일 개봉 예정)'에서 현실과 초현실을 오가는 스토리를 연출하고 연기했다. 개봉을 앞두고 부산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공개된 이 영화의 감독과 주연, 이 두 주인공을 9일 해운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임 감독 영화에 공효진이 캐스팅된 것은 처음이다.

"저는 감독님이 배포 큰 남자 감독 같을 줄 알았어요. 표정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분인 줄 알았는데, 완전히 여자 감독이에요. '접어! 내일 찍읍시다'하고 말할 때는 정말 무서웠어요. 촬영할 때도 '됐습니다. 그만 찍죠'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잘한 건가' 하는 생각이 늘 들었죠."(공효진)

"어떤 감독은 배우들과 기 싸움하느라고 무섭게 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고 그냥 성격인 것 같아요. 촬영할 때 큰소리로 'OK'를 안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다음부터는 좀 더 크게 외치려고요. 아예 꽹과리도 치고 덩실덩실 춤추면서 'OK'를 할까?"(임순례)

'소와 함께…'는 부모와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던 노총각이 부모 몰래 소를 내다 팔러 나가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다른 남자와 결혼했던 여자친구가 "남편이 죽었다"고 전화를 걸어오더니 그의 여행에 동행한다. 김도연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효진씨는 똑똑하고 샤프한 이미지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 작업을 해보니까 제 생각대로였어요. 감독의 의도를 잘 이해하는 배우입니다."(임순례)

제작진은 두 달 촬영 기간 내내 소와 함께 실제로 전국을 여행했다. 청도 우시장에 갔을 때는 임 감독과 소가 먼저 도착하고 촬영 장비는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람들이 오더니 '그 소 참 잘생겼네, 얼마에 내놨어요?' 하고 묻더라고요." 우시장에 갔을 때 소는 자신을 실제로 팔려고 하는 줄 알고 구슬프게 울었고, 그 장면이 결국 영화의 리얼리즘을 더했다.

영화는 소가 서울 조계사에 당도하며 끝이 난다. 서울 시내에서 소를 끌고 다니며 촬영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시내 한복판에서 똥 싸고 오줌 싸고…. 난리 쳤죠."(공효진) "그때마다 조감독이 그걸 치웠는데, '나 원래 이런 일 하는 사람 아니다'하는 애절한 표정을 짓더라고요."(임순례)

영화에는 '맙소사'라는 이름의 절이 등장한다. 경북 의성의 수정사에서 촬영했다. 임 감독은 "수정사 현판을 떼고 '맙소사' 현판을 붙여놓았더니, 등산객들이 와서 깜짝 놀라더라고요. '어제까지만 해도 수정사였는데…' 하는 얼굴이었죠."

애초 시나리오엔 남녀 주인공과 소가 "이제 그만 지지고 볶고 집으로 가자!"고 외치면서 영화가 끝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간신히 마루에 앉혀놓은 소가 촬영하려고 하면 일어나는 바람에 결국 그렇게 찍지 못했다.

연극배우 김영필이 연기한 남자 주인공 선호와 현수(공효진)는 이 '이상한 여행'에서 사랑하거나 다투는 일을 반복하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체험한다. 주인공에게 말을 거는 소, 느닷없이 나타나서 "소를 팔라"거나 "소를 타게 해 달라"는 사람들은 영화를 하룻밤의 꿈처럼 느껴지게 한다.

"기본적으로 멜로 드라마이지만 사랑 후에 남은 미움이나 앙금, 애증 같은 감정이 정말 자신의 것인지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예요. 특히 한국남자들은 뒤끝이 많잖아요. 이 영화 속 남자처럼 '최강 뒤끝'의 남자와 쿨한 여자의 관계를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공효진)

"요즘 자극적인 영화가 너무 많잖아요. 저는 좀 색다른 영화를 찍고 싶었어요. 소설 자체가 매우 관념적이고 문학적이어서, 한 번쯤 생각에 잠기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가을은 생각하기 좋은 계절이니까. 삶과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합니다."(임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