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폭풍 前夜

〈제10보〉(123~133)=폭우 쏟아지는 벌판에 서 있었던 두 사람 중 하나는 벼락을 맞아 숨졌고, 바로 옆의 또 한 사람은 멀쩡했다고 가정하자. 한 발짝 옆자리를 택해 살아남은 쪽의 육감을 칭찬해야 할까. 아니면 엇갈린 결과는 그저 운명이었을까. 바둑도 과학이나 이론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단 한 줄, 돌 하나 차이로 축(逐)이나 수(手)가 성립되지 않는 것은 꼭 실력 탓만은 아닐는지 모른다.

만약 흑에게 123 대신 124로 치중하는 수가 성립했다면 이 바둑은 백이 이길 수 없었다. 참고1도를 보자. 백6의 선수(先手) 활용이 들어 대마는 절묘하게 산다. 흑이 A로 둘 수 없는 결과는 백의 실력인 동시에 흑에겐 운명적 비극이었다. 백도 124가 유일한 생명선. '가'에 두는 것은 욕심으로, 흑 124, 백 '나', 흑 '다'로 대마가 전멸한다.

퉈자시가 마침내 125란 승부수를 뽑아들었다. 126은 위험한 응수. '라'로 평범히 밀고 나갔으면 쉽게 골인했을 것이다. 133까지 우하쪽 백은 완생도, 연결도 아닌 형태가 됐다. 130으로 참고2도는 하변이 질식사한다. 순항하던 백함(白艦)은 여기서부터 갑자기 폭풍우에 휘말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