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 MONEY] 弱달러 强행군

미국 달러화의 약세(弱勢)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일본 엔화 가치는 사상 최고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하락). 중국·호주·스위스·싱가포르·말레이시아 통화 가치도 이달 들어 연일 사상 최고 수준을 경신하고 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한 미국 정부의 약(弱)달러 유도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이 같은 달러화 약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은 지난 8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외환시장에서 1달러당 82.82엔까지 하락(엔화 가치 절상)했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82엔 선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 1995년 4월 말 이후 약 15년 5개월 만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달 2조엔(약 27조원) 규모의 자금을 풀어 엔고(高) 저지에 나섰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이 지난 1995년 기록한 사상 최저치(79.75엔)를 경신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기 시작했다.

남유럽 재정위기로 올 상반기 내내 약세를 보이던 유로화도 달러화 약세 영향으로 강세를 띠고 있다. 유로화에 대한 달러 환율은 연중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유로화는 지난주 한때 1유로당 1.4달러 위에서 거래됐다. 지난 4월 말 1.2달러 선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6개월도 되지 않아 15% 이상 반등한 것이다. 장 클로드 융커 유로그룹 의장은 지난 8일 "유로화가 1.40달러에 육박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면서 "달러가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 통화 가치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선진국 중에선 호주(달러)·스위스(프랑) 통화가, 신흥시장 중에선 중국(위안)·싱가포르(달러)·말레이시아(링깃) 통화가 이달 들어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달러화에 대한 환율은 하락).

이처럼 최근 미국 달러화가 각국 통화에 비해 약세를 보이는 것은 미국 경기가 디플레이션(물가 침체가 지속되는 현상)을 걱정해야 할 만큼 좋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경기 부양에 나섰지만 올 들어 그 효과가 떨어지면서 경기둔화 압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약달러로 수출 경쟁력을 되찾고 이를 통해 경기 회복을 노린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다음 달 중간선거를 앞두고 표심(票心) 잡기를 위해 2차 경기 부양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도 달러 약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다음 달 초 2차 통화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에 나설 것을 공식 발표한 뒤 최대 1조달러(약 1100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풀 것이라는 예상이 월가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8일 발표된 미국 9월 고용 지표가 예상보다 부진한 것도 2차 경기 부양책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김성노 KB투자증권 이사는 "고용 지표 악화로 양적 완화 정책 실시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미국이 천문학적인 달러를 추가로 푼다면 달러 약세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