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초 금감원 '징계 수위(차명계좌 혐의 관련)' 기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한 혐의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 방침을 통보받은 라응찬 신한금융지주(이하 신한금융) 회장은 11일 "가능하면 (신한금융 경영권에) 공백이 없기를 희망한다"며 조기에 스스로 물러나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라 회장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서울 태평로 신한금융 본사 1층 로비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 현직을 유지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라 회장은 2007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50억원을 송금하는 데 차명계좌를 만든 혐의에 대해서는 "옛날에 했던(만들었던), 밑에 시킨 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적으로 계속 이어져왔다"고 말했다.

신상훈 사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과의 동반 퇴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런 혼란기에 (동반퇴진은) 어렵다. 누군가는 수습을 해야 한다"면서 "후계구도는 이사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조직의 안정과 발전, 화합을 위해 (금융당국을) 설득하면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50년 나름대로 올곧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이런 일이 생겨 정말 죄송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라 회장은 지난달 초 신한사태가 불거진 후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많자, 이날 5분 정도 브리핑을 갖고 입장을 밝혔다.

라 회장을 포함한 신한금융 지도부의 거취는 앞으로 금감원과 검찰의 손에 달렸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라 회장은 '사태수습 후 퇴진'을 바라고 있지만 다음 달 초 열리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의 징계 수위가 중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만일 금융당국이 라 회장에 대해 중징계 중 가장 낮은 수위인 '문책경고' 제재를 결정하면 라 회장의 뜻대로 신한금융은 연말 또는 내년 초까지 라 회장 체제를 유지하면서 차기 지도부를 구성하는 연착륙(軟着陸)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문책경고보다 한 단계 높은 '직무정지' 징계가 내려지면 라 회장의 조기 퇴진 가능성이 생기고 신한금융의 지도부 재편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라 회장과 신 사장, 이 행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될 경우에도 신한 지도부에 예상보다 빠르게 변화가 올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라 회장이 원하는 시나리오는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 회장직을 유지하면서 후계구도를 확정 짓는 것이라고 신한금융 관계자는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라 회장의 계획을 그대로 수용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국회 국정감사에서 "(11월에 예정된 신한금융에 대한) 종합검사를 통해서 관련된 상황을 다 들여다본 뒤에 적절하게 책임문제가 거론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 위원장은 지난달 15일엔 "책임 있는 사람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진 위원장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신한금융 경영진이 동반사퇴하면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있을 것이란 우려가 있다"는 박병석 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신한금융의 지배구조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가진 이사회 중심으로 문제가 처리될 것으로 기대한다. 관치금융 의혹이 생길 소지가 없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라 회장은 원래 계획했던 해외 기업설명회를 갖기 위해 11일 저녁 다시 미국 뉴욕으로 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