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별세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집 근처에 있는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실에 매일 가서 하루 일과를 보냈다. 건물의 관리사무소 안에는 18대의 CC(폐쇄회로)TV가 주차장과 계단, 사무실 등 건물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건물 관리인 김모(66)씨는 "철저한 보안 때문에 CCTV 화면으로만 봬 온 분이지만 지난 토요일 오후 평상시같이 퇴근하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김씨가 기억하는 황씨는 휴일과 명절 할 것 없이 정갈한 양복에 중절모를 쓰고 오전 9시 30분이면 경호원들과 사무실에 나타나 오후 4시쯤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올 초 이 건물 1층 식당의 강화유리가 이유 없이 깨져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더니 갑자기 무장 경찰이 출동해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황씨 사무실의 건물주는 "평소 대학생들이 많이 찾아오고 1주일에도 몇번씩 탈북자들을 만나신 것 같더라"며 "2년 전쯤 세입자로 들어온 황씨가 누구인지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이런 분을 모시게 돼 영광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황씨는 1년 365일 왕성하게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황씨는 논현동 사무실과 인근 자택만을 오갈 정도로 생활이 단조로웠다. 사망하기 하루 전인 지난 9일에도 사무실을 나온 황씨는 바로 자택으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 신변보호팀의 경호원은 "선생님은 보안상 외부에서 식사했던 적이 거의 없다"며 일부에서 제기되는 '독살설'을 일축했다. 평소 과묵하고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던 황씨였지만 자신의 경호 때문에 24시간 내내 붙어 다니며 고생하는 경호원들에게는 인간적인 면모도 가끔 내비쳤다. 이 경호원은 "선생님은 내가 알기로만 20여 권이 넘는 책을 쓰실 정도로 사무실과 안가를 오가며 집필 활동에 열중하셨다"며 "그렇게 새 책을 쓰실 때마다 친필 사인을 넣어 경호원들에게 선물로 주셨는데 내용이 어려운 철학책이라도 그 성의 때문에 안 읽어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는 경호원들에게 갑자기 강의 내용과 관련된 질문을 해 경호업무에만 열중하던 경호원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경호원은 "대부분의 경호원이 마찬가지겠지만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니 마치 부모님을 잃은 것처럼 허전한 마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