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씨 별세] ['송두율 사건' 검사들의 회고] 황장엽 버럭 "송두율, 학자의 양심을 버렸다"

10일 별세한 황장엽(87)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1997년 망명 이후 한 차례 검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2003년 9월 귀국한 재독(在獨)학자 송두율씨를 검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할 때였다. 당시 검찰은 송씨를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의심하고 있었고, 이를 뒷받침해줄 황씨의 진술이 필요했다.

수사 검사들은 황씨의 안가(安家)로 찾아갔지만, 그의 첫 반응은 싸늘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조사를 해서 뭐 하나. 처벌도 못할 건데. 이젠 (정부가) 내 말도 믿지 않는데, 내가 왜 조사를 받아야 하느냐"면서 노무현 정권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전했다. 그는 '햇볕정책'을 내세운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외부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사실상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지냈다. 하지만 "송씨를 형사 처벌하려면 진술이 꼭 필요하다"는 검사의 설득에 그는 조사에 응했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도 북한 체제와 남한의 좌파 세력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송씨에 대해선 "학자의 양심을 버렸다"며 강하게 비판했다고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말했다.

송씨는 1991년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임돼 반국가 단체의 임무에 종사했다는 혐의 등으로 2003년 10월 구속 기소됐다.

검찰이 그를 기소한 데는 황씨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황씨가 1990년대 초반 김용순 북한 대남 담당 비서로부터 "송씨가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더니 건방지게 되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1심 재판부는 황씨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여 송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송씨가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증거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면서 밀입북 혐의 등 일부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송씨는 2심 선고 직후 곧바로 독일로 출국했고, 송씨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는 확정됐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아직도 송씨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믿고 있다"며 "하지만 황씨의 죽음으로 진실이 규명되려면 통일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