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참 스승을 잊지 않았다

1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강릉농공고 본관동 앞. 크레인이 '웅~' 소리를 내며 높이 2m25㎝, 무게 2.5t에 달하는 화강암 기단과 청동 재질 흉상을 트럭에서 들어 올려 교정에 내려놓았다. 곁에는 학교를 졸업한 지 60년이 넘은 졸업생들이 "왼쪽, 오른쪽. 천천히" 등을 외치며 흉상이 제자리에 놓이도록 도왔다. 이 학교 교무부장과 행정실장은 물론 흉상을 제작한 동국대 미술학부 조승환 명예교수도 작업을 지켜봤다.

강릉농공고총동문회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격동의 시기에 교사와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학교 발전을 견인한 고(故) 최용근 교장 흉상 제막식을 오는 16일 가질 예정이다. 이에 앞서 이날 흉상을 교정에 설치하는 작업을 벌였다.

최 교장은 강릉농공고 6회 졸업생으로 일본 이와테(岩手)현 모리오카(盛岡) 고등농림학교(현 이와테 대학) 임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1942년부터 1954년까지 13년간 강릉농공고에서 교사와 교장으로 활동했다. 학교를 떠나서는 제3·4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와 모교 발전을 위해 헌신하다 1973년 54세 때 별세했다.

70~80대가 된 그때의 제자들은 작년 9월 학교 기틀을 다진 최 교장 업적을 기리자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동상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정호돈 동상건립추진위원장은 "이제 제자들도 나이가 들어 살아 있을 때 은사에 대한 뭔가를 남겨야겠다는 뜻을 모아 사업을 추진했다"고 했다. 이를 위해 245명의 동문이 십시일반 8304만원을 모금했다.

제자들은 최 교장이 '학교를 있게 만든 주인공'이라는 평가에 이의가 없다. 6·25 전쟁 당시 학교를 버리고 피란을 떠나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학적부 등을 땅에 묻어뒀다가 수복 후 되찾기도 했다. 전투로 건물이 파괴됐을 때 최 교장은 학생들과 힘을 합쳐 1954년 교사(校舍)를 신축했다.

강릉농공고가 축구 명가로 명성을 얻는 데도 최 교장 공이 컸다. 체육 진흥책으로 1인 1기 체육 교육을 한 결과 강릉농공고 축구부는 1947년 전국체육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국 규모 대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1928년 7월 강원 영동지역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으로 개교한 강릉농공고는 올 2월 81회 졸업생까지 모두 2만1149명을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