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책임질게" 매달 600만원 보내주는 친구

지난 9일 오후 서울 논현동 나누리병원. 장일태(53) 원장이 친구인 한희철(52) 고려대 의대 교수에게 두꺼운 신간 의학서적을 건네며 "한번 보라"고 했다. 한 교수는 "이야, 이렇게 정리가 잘돼 있는 건 처음 보는데"라고 했다.

고려대 의대 77학번 동기로 33년 지기(知己)인 둘은 서로를 '관절'(한 교수)과 '척추'(장 원장)라고 부른다. 한 교수는 신경생리학을 전공해 관절 통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장 원장은 신경외과를 전공해 척추 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둘은 자칭 '인류 구하기 프로젝트'를 1년 6개월째 진행 중이다. 장 원장이 인건비·시약비·동물실험비 등 연구비를 대주면, 한 교수가 전공인 퇴행성 디스크 원인을 집중 연구하는 10년짜리 프로젝트다.

장 원장은 "허리가 아프면 물리치료하고 통증이 심해지면 수술하는 관행적인 치료에 한계를 느꼈다"며 "요통의 주범인 퇴행성 디스크를 정복해보려고 친구와 손잡았다"고 했다. 한 교수는 친구의 제안이 너무 반가웠다. 연구비가 늘 아쉬웠던 참이다. 한 교수는 "환자를 돌보는 의사도 좋지만 병의 원인을 밝혀 수많은 환자를 고치고 싶어 선택한 기초 의학의 길"이라며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연구비 확보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77학번 동기 103명 중 학교에 남아 기초의학을 공부하는 친구는 4명뿐이라고 한다.

장 원장은 지난해 3월부터 한 교수가 있는 고대 의대 생리학교실로 매달 600만원가량씩 송금하고 있다. 10년간 총 10억원을 예상하는데, 현재 1억원이 넘었다.

한 교수는 "병원 운영비도 만만찮을 텐데 친구가 고맙다"며 "밤늦게까지 수술해가며 번 돈인 걸 아니까 허투루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고 했다.

둘은 석 달에 한 번 연구 성과에 대해 토론한다. 두 사람은 "성과나 결과물이 보장된 건 아니지만, 환자들을 고치겠다는 생각 하나로 친구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게 즐겁기만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