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손발 돼 주며 만든 '가장 아름다운 옷'

"어떻게 해요, 너무 긴장돼요."

패션쇼가 열리기 직전, 무대 뒤에서 준비하고 있던 청각장애인 조수안(41)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두 손에 땀이 나는지 연방 비벼댔다. 하지만 패션쇼가 시작되자 조씨는 오른손을 번쩍 들고 사람들을 향해 흔들며 음악에 맞춰 걸어나갔다. 관객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야외무대에서다.

무대에 선 모델 가운데는 조씨와 같은 장애인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장애인문화사업단체인 '장애인문화공간'이 지난 5월에 5개월 과정으로 문을 연 '장애여성 패션디자인아카데미' 수강생들이다. 이날 패션쇼에는 이들이 직접 만든 옷을 장애·비장애 여성들이 입고 나왔다. 패션쇼의 주제는 '탈출'. 장애인문화공간 이지연 간사는 "장애인의 몸에 맞지 않는 불편한 기성복을 거부하고, 옷을 사러 갈 때마다 느꼈던 불편한 감정도 거부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옷을 몸에 맞춰 입는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이라나(28·지체장애1급)씨는 "작년 말 노래패 공연을 하려고 공연복을 사러 갔다가 포기했었다"고 했다. 그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도 어려웠지만,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도 대부분 높은 곳에 걸려 있어서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점원에게 부탁해 받아 보면 이번엔 몸에 맞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왜소증 때문에 키는 120㎝ 정도지만 품은 남들과 마찬가지"라며 "하지만 길이가 안 맞아 아동복도, 기성복도 입을 수 없는 처지"라고 했다. 이씨는 이날 자신이 직접 만든 노란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양 갈래로 땋아내려 멋을 냈다.

두 다리와 왼쪽 팔이 불편한 문애린(30·뇌병변1급)씨는 "난 밀리터리룩(군복 이미지 의류)을 좋아하는데 맘대로 스타일을 뽐낼 수 없어 아쉬웠다"고 했다. 줄여 입을 요량으로 인터넷을 통해 구입해도 수선비가 더 들 때가 많아 구입 자체를 포기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번에 주변의 도움을 받아 옷을 완성한 문씨는 "내 몸의 치수를 여기저기 재다 보니 내 몸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됐다"고 했다.

반년 가까이 아카데미에서 재봉기술을 배우는 동안 팔이나 발이 불편한 수강생들은 재봉틀을 다루기 힘들어 애를 먹었다. 이라나씨의 경우, 발판을 아예 무릎 위에 올려놓고 사용했다. 발판은 장애여성이 밟고, 옷감은 옆에서 다른 사람이 바늘 밑으로 밀어넣어 주기도 했다. 강사 이순옥(55·무궁화문화센터 원장)씨는 "서로 손이 되고 발이 되어 주며 옷을 만드는 모습이 아름다웠다"며 "오히려 내가 배운 게 더 많은 시간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