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그림 거꾸로면 어떤가 꽃에 上下가 있던가"

제22회 이중섭(李仲燮)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서양화가 김홍주 화백은 조용하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지켜오면서 미술계의 관심을 모아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근기(根氣)와 쇠하지 않는 에너지, 경쾌한 유머를 화폭에 담아왔다.

김 화백은 1970년대 잠깐 아방가르드 그룹인 'S.T(Space & Time) 그룹'에 참여했지만, 이후에는 미술의 특정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를 펼쳐왔다. 그는 "S.T 그룹이 개념미술을 하면서 당시로선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을 보여줬지만, 내 체질에는 맞지 않아 점차 멀리했다"고 말했다.

김 화백은 대광고 교사 시절 서울 신설동 부근 고물상을 드나들면서 버려진 의자와 창틀, 거울 등을 가져와 이를 화면에 붙이고 그림을 그렸다. 오브제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관람객은 창틀 안에 그려진 이미지를 통해 이곳이 아닌 저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며 빨려 들어갔다.

1974년 무렵 김 화백이 오브제를 회화에 이용하면서 발견한 것이 세필(細筆)이었다. 세필을 이용한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은 '꽃 그림' 연작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쁘고 잘 그려진 연꽃이 아니라 화면에서 계속 자랄 것같이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꽃이다. 꽃뿐 아니라 산이나 논두렁도 화면을 꽉 채우며 덩그러니 놓인다.

김 화백의 작품에서 보이는 치밀하고 세밀한 작업에서 그리기 자체를 통한 정신적 행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2009년 아르코미술관 전시에서 "그림은 사실이 아닌데 자꾸 대상을 묘사하는 데서 갈등 요소가 내재해 있다"며 "이 내재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쉼 없는 그리기뿐"이라고 밝혔다.

김홍주 화백의 작품은 회화에서 기호화된 도상화(圖像化)의 관성을 바꿔놓으려는 시도가 깔려 있다. 그는 "연꽃에서 연등이 나오고 부처의 대좌(臺座)가 나왔는데 내가 그린 연꽃은 거꾸로 연등을 보고 그린 이미지"라고 말했다. "마릴린 먼로 하면 할리우드나 섹시 배우를 연상하듯 '마릴린 먼로'는 도상화된 겁니다. 그래서 저는 거꾸로 도상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본 겁니다." 그의 의도는 이미지를 어떤 맥락이나 상징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원초적으로 감각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림을 통해 어떤 의미나 상징을 읽어내는 게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을 펼치게 하자는 의도다.

김 화백은 '꽃 그림' 같은 작품은 거꾸로 걸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는 "꽃에 상하(上下)가 있느냐"고 반문한 뒤, "사람도 직립(直立)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설 수 있는데, 사물을 공간으로부터 분리하면 어느 방향에서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화백은 중·고등학교 시절 특별활동으로 미술반을 택한 것이 화가가 된 첫걸음이었다. 그는 "대학 등록금을 대줄 형님이 '너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해서 미술대학을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화백은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붓을 놓지 않았고, 교사나 대학 교수가 돼서도 느슨해지지 않았다. 그는 "세밀한 붓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눈이 많이 나빠졌다"면서 "세필로 작업을 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새로운 스타일도 생각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중섭미술상 운영위원회는 지난달 회의를 열고, 올해부터 시상식과 수상 기념 특별전 개막식을 함께 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김홍주 화백의 수상 특별전은 12월 2일부터 12일까지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린다. (02)724-6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