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꼴 '싸움닭' 이세돌·강동윤 이번에 끝장본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8년 가을 19세 하이틴 스타 강동윤이 펄펄 날고 있다. 마인드스포츠게임즈 개인전을 제패하더니 농심배서도 파죽의 5연승을 달렸다. 그 와중에 천하의 이세돌(당시에도 그는 랭킹 1위였다)과의 연속 타이틀전이 시작됐다. 천원전과 명인전 결승을 합해 '10번기'라고들 했다.

먼저 강동윤이 2승을 선제했으나 이후 이세돌이 내리 6연승으로 반격한다. 이세돌은 명인을 3승1패로 접수한 뒤 천원전서도 2승1패로 뒤집었다. "역시 이세돌은 아무도 못 당하는군"이란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러나 강동윤은 기어이 3대2 재역전에 성공하며 천원에 등극했다. 그 기세는 5개월 뒤 첫 세계 제패(22기 후지쓰배)로까지 이어졌다.

반면 6세 연하 후배와의 타이틀 번기(番棋) 승부에서 패한 이세돌은 6관왕 등극 무산과 함께 국내외 4개 기전 연속 우승 행진에 제동이 걸렸다. 그달 하순 시작된 중국 구리(古力)와의 LG배 결승서도 영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긴 호흡으로 보자면 슬럼프와 휴직 등 이세돌이 한때 겪었던 굴곡의 출발점은 강동윤에게 패했던 천원전 결승이었다.

그 둘이 다시 결승 5번기에서 딱 마주쳤다. 지난 4월 개막, 반년 간 숨 가쁘게 달려온 제1회 KT배에 이세돌(27)·강동윤(21) 단 두 명만 남은 것이다. 이세돌은 진시영·한웅규·윤준상을, 강동윤은 김기용·안조영·최철한을 딛고 결승 고지를 밟았다.

올해 흐름을 보면 이세돌은 '쾌청', 강동윤은 '가끔 흐렸다 갬'이다. 이세돌은 바둑계 복귀 후 8개월 연속 톱 랭커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 13연승을 질주하며 연초 자신이 작성했던 24연승을 넘어설 기세다. 지난달엔 이창호를 따돌리고 물가정보배도 손에 넣었다. 금년 전적 58승7패로 다승, 승률 공히 1위다.

반면 강동윤은 44승23패로 예년보다 많이 저조하다. 8월 초 4연패의 늪에 빠졌다가 이후 7연승을 거두고, 다시 2연패 후 2연승 하는 등 기복이 심하다. 10월 랭킹도 7위로 지난달에 비해 한 단계 하락했다. 그러나 기세를 탈 때의 강동윤은 아무도 못 말린다. 타임머신 타고 가 확인한 그대로다. "천하의 이세돌에 브레이크를 걸 임자는 강동윤뿐"이란 말이 나올 만하다.

이세돌과 강동윤은 묘하게도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천재형으로 분류되고, 틀에 얽매이지 않으며, 난해하고 변화무쌍한 바둑을 즐긴다는 점이 똑같다. 호쾌한 공격력으로 형세에 관계없이 끝장을 본다는 점도 일치한다. 재치 있는 화술, 솔직한 인터뷰로 팬들을 열광시키는 재주까지 복사판이다.

강동윤은 평소 이세돌의 바둑에 대해 "상상도 못할 곳에서 귀신같이 수를 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한다. 다른 청년 기사들과 똑같이 그도 이세돌을 경원하고 있다는 뜻.

하지만 이번 KT배 준결승 관문을 먼저 통과한 뒤 강동윤은 "이세돌 선배와 결승을 치르고 싶다"고 공개 석상에서 밝혔다. 자신 있으니 한 번 더 붙어보자는 패기가 전달돼 온다.

이틀 뒤엔 이세돌이 윤준상을 꺾고 결승에 합류한 뒤 이렇게 말했다. "동윤이 인터뷰를 봤다. 암만해도 내가 이긴 게 동윤이 덕인 것 같다." 암호 해독(?)을 하자면 이쯤 되지 않을까. '결승에서 나하고 두고 싶다고? 맛을 보여줄 테니 기다리고 있어!'둘의 인터뷰 방식은 과거 선배들의 '모범 답안'과는 영판 다르다.

수많은 결승전 조합(組合)이 지나갔고, 또 만들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세돌·강동윤 카드는 정말 '먹음직스러운 메뉴'다. 승부나 바둑 내용뿐 아니라 대국을 전후해 쏟아질 말의 성찬(盛饌)도 기대된다. 통산 전적에선 13승7패로 이세돌이 앞서 있으며 결승 5번기는 26일 시작된다. 우승상금 1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