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임창용으로부터 배운 인내심

그리고 배영수가 있었다.

삼성의 '가을 드라마'에는 역시 배영수가 있어야 제맛일까. 배영수가 11일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마지막 1⅓이닝을 깔끔하게 틀어막으며 세이브를 기록했다. 어떤 투수가 나와도 일단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일 것만 같았던 경기에서, 배영수는 달랐다.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의 깜짝 불펜 등판을 연상케하는 인상적인 피칭 내용을 선보였다.

당초 5차전 선발로 내정됐던 배영수가 4차전 마무리로 투입됨에 따라 삼성의 5차전 투수 운용 구도가 달라졌다. 차우찬이 선발로 나서게 됐고, 배영수는 또다시 불펜에서 대기할 전망이다. 현재 삼성 투수들 가운데 경험과 구위 면에서 가장 안정돼있으니, 그가 불펜에서 버티고 있으면 5차전도 희망적이다.

배영수는 올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다. 구속은 여전히 빨라지지 않고, 공끝이 좋지 않으면서도 힘으로 승부하려는 작년 버릇이 또다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리소문 없이 포심패스트볼 스피드가 조금씩 늘어나더니 시즌 막판에는 직구 공끝에 '테일링' 현상까지 나타날 정도로 좋아졌다. 바깥쪽 꽉 찬 코스로 던진 포심패스트볼이 마지막 순간 공끝이 좋아 마치 오른쪽으로 약간 휘는 것처럼 보이는 걸 뜻한다.

이같은 배영수의 부활 배경에는 일본에서 활약중인 임창용(야쿠르트)의 조언이 자리잡고 있다. 둘은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던 공통점이 있고 평소 친분이 두텁다. 배영수는 올해 들어서도 틈만 나면 "창용이형과 통화했는데 '언젠가는 공끝이 다시 살아날테니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임창용은 수술후 3년째 되던 해부터 옛 기량을 회복했다. 배영수도 올해 만 3년이 넘으면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임창용은 배영수에게 "단순 스피드가 중요한 게 아니다. 볼의 회전수가 늘어나면 스피드는 낮아도 위력 있는 공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하곤 했다. 만 29세로 아직 젊은 배영수가 답답했던 마음을 임창용의 조언으로 달래곤 했던 셈이다.

배영수 앞에는 세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선 어려울 때 힘이 돼준 여자친구와 오는 12월19일 르네상스서울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야구에는 문외한이지만 배영수가 재기의 고통을 겪을 때 곁을 지키며 용기를 내게 해준 여자친구다. 한편으론 배영수는 12월에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 어쨌거나 본인이 소속팀을 결정할 수 있는 첫번째 기회다. 그에앞서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내는 게 당면한 목표다.

망가진 줄 알았던 배영수가 어느새 포스트시즌 삼성 불펜의 핵심이 돼있다. 물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면 다시 선발로 뛸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삼성의 가을 드라마는 배영수가 출연해야 제맛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