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英譯… '인문학 한류' 이끌 것"

"조선왕조에서 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한편으론 학계의 주요 과제인 한국사 연구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더욱 노력할 계획입니다."

지난달 말 취임한 이태진(李泰鎭·67) 신임 국사편찬위원장은 지난 7일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정체성 정립과 한국사의 세계화를 양대 과제로 내세웠다. 대한민국 정체성 정립과 관련, 이 위원장은 "특히 버리고 싶은 역사처럼 되어버린 고종·순종 대에 대한 역사인식을 바로잡아 국민들이 우리 근현대사의 연속성에서 미래의 역사를 창조해간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고종을 중심으로 한 대한제국의 근대국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집중적으로 재조명해 온 대표적인 학자이다.

이 위원장은 또 "국가사와 민족사가 하나라면 좋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며 "이럴 땐 당연히 국가사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기준이 분명하게 서 있지 않으면 혼란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사를 중심으로 민족통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진 위원장이 한국사의 세계화를 위해 구상하는 사업은 조선왕조실록의 영역(英譯)이다. "어느 나라 역사기록보다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실록을 통해 외국인들은 한국이 얼마나 유구한 문화민족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특히 자연재해 등 기상 기록은 글로벌한 자료이기 때문에 외국 학자들도 충분히 흥미를 가질 것입니다. 실록 영역은 또 대중문화에서 시작된 한류(韓流)를 인문학 차원에서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실록 영역에는 해외의 한국학 연구자와 그 제자들을 대거 참여시킬 계획이다.

이태진 위원장은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 전임강사를 거쳐 1977년부터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서울대 인문대학장, 역사학회 회장, 한국학술단체연합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이 위원장은 다방면의 연구활동과 함께 활발한 대외활동으로 대중적으로도 지명도가 높은 '스타 학자'이다. 서울대 규장각도서관리실장을 맡았던 1991년 재불(在佛)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와 함께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 군대에 약탈당한 강화도 외(外)규장각 도서의 반환 문제를 제기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의 불법무효를 밝히는 데 오랫동안 힘을 기울였으며 지난 7월에는 이와 관련한 한·일 지식인 성명을 주도했다.

이태진 위원장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사의 대중화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그가 구상 중인 아이디어는 과천 국사편찬위원회와 서울 광화문·여의도 등에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한국사' 강좌를 개설하는 것이다. 서울대 인문대학장 시절 '인문학 최고지도자 과정'을 개설해 큰 호응을 받았던 경험이 토대가 됐다. 이 위원장은 "국민들이 우리 역사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한국사 퀴즈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