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무대 올라 젊게 살아요" 노인 모델 납시오

지난 9일 오전 11시 서울 양재동 서초문화예술공원 야외 공연장에 10m 길이 레드카펫이 깔렸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할아버지 모델들이 카펫 위에 올랐다. 관객 1500여명이 웅성거렸다.

"어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빨간색이네." 패션쇼를 지켜보던 홍예은(14)양이 놀란 표정으로 말하자, 송아리(14)양이 "저 할머니는 다리가 쫙 빠진 게 우리보다 예쁜 것 같아"라고 했다.

서초구립 양재노인종합복지관 소속 '노인 모델'들이 연 패션쇼다. 서초구는 3년 전부터 60세 이상 노인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모델을 모집해왔다.

"내가 원래 어릴 때부터 끼가 많았지. 호호." 교사 경력 31년의 김숙자(62)씨는 은퇴하고 재작년에 모델이 됐다. 국제단편영화제에 낼 대학생의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고, 지하철공사 달력 모델도 해봤다. 그는 "정신없이 바쁘지만 요즘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삼성전자에서 20년간 일하다 퇴직한 박무호(68)씨는 대기업 광고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노인 대상 연극에도 출연했다. 그는 "왜 굳이 이런 일을 하느냐는 말도 듣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고금석(65)씨는 사업가였다. 과일가게를 하다가 강남개발 초기에 부동산중개업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는 5년 전 종로에서 '노인 모델 채용' 광고를 보고 발을 들였고, 재작년 서초구 노인 모델로 뽑힌 후로는 연극·영화·TV 광고를 누비고 있다. 지금도 어느 생명보험사의 광고 모델이다. 그는 "영화 단역으로 하루에 15만~25만원을 받고, 비중 있는 역할을 맡으면 한 번에 150만원을 받기도 한다"고 자랑했다.

노인 모델은 1년에 두 차례 있는 오디션을 거쳐 발탁된다. 지난달 킨텍스에서 열린 오디션에는 20명 모집에 200명이 모일 정도로 성황이었다. 김경수 사회복지사는 "모델을 뽑을 때는 얼마나 웃는 인상인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를 본다"며 "아무튼 해가 갈수록 인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