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 오가다 사업까지… 이건 운명이죠"

"한국은 남·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면, 같은 민족이지만 완전히 다른 이 두 체제가 어떻게 가능한지 가까이서 볼 수 있어요. 내가 본 생애 최고의 절경인 금강산도 여러분이 한국어를 배워야 할 이유고요."

14년 전, 러시아 모스크바외국어대학의 한국어 강의 시간. 1학년이던 알렉세이 아스타피예프(33)씨는 교수가 설명하는 '한국'에 빠져들었다. 동양어학부의 여러 외국어를 놓고 전공을 고민하던 그는 한국어를 선택했고, 이후 지금까지 한국과 질긴 인연이 이어졌다.

그는 지난달 러시아철도공사의 물류전문 자회사인 트랜스컨테이너사(社) 아시아태평양 초대 법인장으로 취임했다. 2만5000대의 화물차와 6만개의 컨테이너, 47개의 화물터미널을 보유한 러시아 최대 물류회사다. 아시아 지역의 경기 회복 속도를 지켜보던 중, 한국을 동아시아의 물류 허브로 보고 법인을 세웠다고 한다. 그전에도 한국은 사업차 여러 차례 드나들었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어요. 이 정도면 '운명'이라 할 수 있죠. 한국이 분단국가란 것도 모르던 저였어요. 금강산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외교사절 통역도 맡았지요. 그리고 이젠 한국에서 사업을 일으키게 됐네요."

그는 러시아철도공사에 입사한 후 나진~하산 간 북·러 국경 철도개·보수 사업에 참여하느라 2002~2005년 북한에서 일했다.

그는 낡은 북한 철도와 분단으로 인해 섬나라나 마찬가지인 남한의 사정 모두를 본 후, 남북교류와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남북이 합쳐지면 서울에서 바로 대륙으로 연결돼 프랑스까지 가는 겁니다. 비용 절감은 물론이고 환경에 해도 덜 갑니다. 철도처럼 실무적인 선에서부터 조금씩 남북 교류의 숨통을 터 가면 정치도 잘 풀리지 않을까요."

그는 현재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에서 수업도 듣고 있다. 퇴근하라고 해도 늦게까지 일하는 직원들, 도서관과 강의실을 바삐 오가는 학생들을 보며 '한국인은 정말 뭐든 열심히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저러다가 자칫 삶의 균형을 잃는 건 아닌지 걱정될 때도 있다"고 했다.

미혼인 그는 보름 전부터 주말마다 골프 연습 중이다. "한국처럼 사업에서 골프가 중요한 나라는 처음 봤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골프 치냐'고 물어오니,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일이 먼저인지 골프가 먼저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사람을 알고 사업 아이디어를 나누는 한국식 방법이죠. 술이야 뭐…, 러시아 사람인데 술을 못 하겠습니까. 분위기에 취하면 술술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