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對 살인마 스토커… 인질극은 '방송중'

'심야의 FM'(14일 개봉)은 첫 장면을 마틴 스코시지의 명작 '택시 드라이버'(1976)에서 응용해 보여주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밝힌다. 이 스릴러는 납득하기 어려운 여러 장면과 묘사에도 불구하고 꽤 인기를 끌 만하다. '추격자' 이후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한국 스릴러의 관건은 역시 스토리에 있다. 물론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을 능가하는 살인마 캐릭터는 아직 한국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뉴스를 진행하던 싱글맘 선영(수애)은 심야 라디오 DJ로 좌천돼 5년간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유학을 빌미로 휴직키로 하고 마지막 방송에 나선 날 청취자 전화 연결 코너에서 동수(유지태)의 전화를 받는다. 동수는 "이제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음악을 틀고 말을 하라"며 "누구에게라도 알리면 가족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선영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자 이미 선영의 집에 침입한 동수는 그녀의 여동생을 살해한다. 동수는 이어 선영의 어린 딸까지 죽이겠다고 윽박지른다.

생방송 중인 DJ는 음악이 나가는 짧은 시간 동안 범인과 통화하며 협상을 해야 한다. 영문 모르는 PD와 작가는 난리를 치고,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는 주인공은 피가 마른다. 영화의 긴박한 설정은 관객의 조바심을 부채질한다.

일찌감치 얼굴을 드러내는 범인은 거구의 정신분열증 환자다. 몇년 몇월 며칠에 주인공이 어떤 음악을 틀었고 어떤 말을 했는지 낱낱이 기억하는 그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에서 응용됐다. 그의 인터넷 닉네임 역시 트래비스이며 직업도 택시기사다.

차분하게 영화를 빗대어 사회 비평을 해온 DJ의 방송을 들으며 애청자인 동수는 광기 어린 환각상태가 돼 간다. 동수는 그녀의 팬에서 노예가 되고, 결국엔 그녀를 조종하려 들면서 설득 불가능한 미치광이가 돼 간다. 라디오를 듣다가 경찰 둘을 죽이고 난 그는 "3분이나 못 들었잖아"라고 말한다.

인디 뮤지션이면서 '공동경비구역 JSA' 미술감독 출신인 김상만 감독은 '걸 스카우트'에 이은 이 두 번째 연출작에서 여러 영화의 이미지와 캐릭터를 차용해 녹여내 감각적인 영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택시를 타고 달아나는 범인과 그를 추격하는 피해자와 경찰 그리고 오토바이 폭주족까지 끼어드는 한밤의 추격신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단편영화처럼 잘 만들어졌다.

그러나 스토리의 확장을 따라가기엔 연출의 힘이 버겁게 느껴진다. 살인 현장이 생중계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두고 고작 경찰차 한 대가 범인을 추격한다든가, 한강 다리 밑 공터에 홀로 방치된 컨테이너가 살인마의 은신처라는 설정은 상식 밖이다. 손목을 앞으로 묶은 채 입을 테이프로 막는 연쇄살인범은 너무 어설프다(손으로 테이프를 떼면 되니까). 망국 직전의 명성황후 같은 수애의 말투나 광기를 끓어 올리기만 할 뿐 터뜨리지 못한 유지태의 연기도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