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땅을 치다

〈제13보〉(156~180)=격렬했던 폭풍우는 일단 가라앉았지만 새로운 긴장이 반상(盤上)에 넘실거린다. 이제 승부는 중원 벌판에 산재한 흑돌들이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결판날 참이다. 이창호는 158 이하 161까지 상변 흑을 살려 보내며 중원에 올인할 것을 선언한다. 162 치중 후 164는 백의 권리. 그래 놓고 마침내 166에 붙여갔다. 쌍방 물러설 곳 없는 최후의 전투다.

퉈자시는 3분의 숙고 끝에 167로 늘었다. 그러면 175까지는 외길 코스. 176의 남은 최대처를 선수(先手)로 차지한 뒤 180으로 중앙에 울타리를 쳐선 미세하나마 백의 우세가 확립됐다. 그렇다면 이미 흑의 패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을까. 아니었다. 167 시점에서 아직도 흑은 이길 기회가 있었음이 훗날 밝혀진 것. 167로 참고도처럼 두는 묘미 있는 변화를 감상할 차례다.

1을 선수해둔 뒤 3 다음 5가 묘수. 백A의 절단은 축이므로 6 이하 10까지 끊을 수밖에 없을 때 11로 역습해 간다. 결국 수상전인데 17로 먹여쳐 흑이 1수 빠르다. 수순 중 백6으로 B면 흑도 10에 두어 함께 살아간다. 그것 역시 흑이 이기는 그림. 백으로선 아찔한 장면이었다. 훗날 퉈자시는 참고도의 변화를 발견한 뒤 땅을 치며 아쉬워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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