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위산업 이대론 망한다"

"한국 방위산업은 이대로 가면 망한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이달 13일 조선비즈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방산업계 현실을 경고했다. 2004년 한국방위산업진흥회(방진회) 11대 회장을 맡은 후 현재(13대)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는 조 회장이 방진회장 자격으로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국내 방위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물량 부족'을 꼽았다. "정부가 최소한 생산라인을 유지할 정도의 물량은 줘야 하는데 이게 안 되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는 생산원가가 올라가는 문제가 있다. 방산업체들에 대한 정부 지원을 특혜로 봐서는 곤란하다."

대한항공 서울 서소문 사옥 18층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조 회장은 1시간 30여분 동안 국내 방산업계 현실과 항공업계 전망, 그룹의 미래, 평창올림픽 유치 전략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경영자 자리는 쟁취하는 것이지 저절로 굴러 떨어지는 게 아니다"며 "정부가 망할 회사는 망하게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방위산업이 어렵다. 업체들의 가동률이 60% 수준이고 내수는 이미 포화단계다. 해결책이 있는가?

"좀 극단적인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방위산업이 이대로 가면 망하게 돼 있다. 국내 시장이 작고 국방부 물량이 적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물량을 주지도 않고, 계약도 1년 단위로 한다. 생산력이나 노동 인력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데, 같은 양도 찔끔찔끔 준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생산원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외국과 비교하면 어떤가.

"미국에서는 정부가 장기 계약으로 물량을 유지하게 해주니 총비용을 계산할 때 원가가 낮아진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기술 축적이 안 되고 원가는 원가대로 높은 게 근본적인 문제다. 일부에서는 '자주국방' 이야기들을 하는데, 이때까지 전 세계에서 독자적으로 비용이라는 개념 없이 방산물품을 생산한 게 한국과 이스라엘, 스웨덴,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도밖에 안 된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자주국방을 외쳤고, 이스라엘은 정치적 목적으로, 스웨덴은 중립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독자 개발을 했다. 남아공은 인종차별로 인한 국제적 고립 때문에 독자개발을 하게 됐다. 하지만 스웨덴이나 남아공은 냉전이 끝나고 인종분쟁이 잦아들면서 이 개념이 약화됐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모든 걸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게 문제다. 공동 개발, 공동 생산, 공동 판매 체제로 가야 한다."

―과거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 인수 의사를 밝힌 적이 있는데, 아직도 관심이 있나.

"가격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수준에 맞고 여건이 성숙되면 인수를 추진하겠다. 자금 여력은 충분하다. 올해 대한항공은 최고 이익을 낼 전망이다. 우리가 KAI에 관심을 가지니 보잉, 에어버스 등도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상당한 외자유치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미국은 항공물류산업의 부침이 심해서 일부 업체가 정리됐고, 일본도 일본항공(JAL)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항공사 상황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항공시장이다. 이 시장을 보고 저가 항공사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정부가 자율 경쟁체제를 만들어 망할 회사는 망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정신 바짝 차리고 산업경쟁력도 커진다."

―최근 차녀인 조현민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 팀장이 직접 광고에서 번지점프를 해 화제가 되는 등 대한항공 3세들의 '남매 경영'이 관심을 받고 있다. 장녀인 조현아 전무는 기내식 부문, 조원태 전무는 여객부문, 조현민 팀장은 광고·마케팅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역할 분담이 확정된 건가.

"누가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단정 짓기 이르다. 지금은 모두 '트레이닝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조원태 전무는 경영학, 조현아 전무는 호텔경영, 조현민 팀장은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자기 적성에 맞춰 전공을 택했고, 그에 따라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거다. 항공물류 분야는 워낙 복잡하고 다양화돼 있기 때문에 전문성이 필수적이다. 자식이라고 특혜를 주면 안 된다. 훈련이 되지 않은 미숙한 상태에서 회사를 물려주면 50% 상속세만 무는 격이 되지 않겠는가. 경영자 자리는 스스로 쟁취하는 거지, 굴러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한진그룹을 장남이라고 받은 게 아니다. 엔지니어링 분야 등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후에야 물려받았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단독으로 맡고 있는데.

"유치 여부는 누구도 장담을 못한다. IOC를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이다. 우리가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은 아시아가 동계올림픽의 새로운 시장이라는 점이다. 아시아 지역 젊은이만 6억5000만명이다. 또 요즘 한국은 싸면서도 시설이 좋아 동계스포츠 허브가 되고 있다. 이런 점을 부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