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神'의 그늘에서 빛 바랜 '태양'

선동열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 투수다. 현역 때 그가 불펜에서 몸을 풀면 상대가 경기를 포기했을 정도로 위력적인 공을 던졌다. 그런 그가 일본 주니치에서 뛰며 호시노 센이치 감독으로부터 마운드 운용까지 배웠다. 선발보다 중간 계투진, 셋업맨, 마무리 투수로 이어지는 불펜에 비중을 두는 시스템이 그것이다.

'선동열 스타일'은 2005·2006년 한국시리즈 2연패로 진가를 보였다. 2004년 삼성 수석코치 시절 당시 김응용 감독이 투수진 운용의 전권을 선 감독에게 준 것이나,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도 선 감독이 김인식 감독의 허락을 받아 투수 교체를 직접 결정한 것은 유명하다.

그런데 올 포스트 시즌에선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계속 나오고 있다. 두산과 플레이오프 3차전, SK와 한국시리즈 1차전은 선동열식 불펜 운용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플레이오프 3차전에선 연장 11회 초 2점을 뽑은 뒤에도 스무 살 된 정인욱에게 마무리를 맡겨 역전패를 자초했고, 한국시리즈 1차전에선 선발 레딩과 세 번째 투수 권오준을 너무 빨리 교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1차전 경기 후 선 감독은 "투수 교체를 잘못한 감독의 실수로 졌다"고 인정했다. 이는 선 감독이 지나치게 내년 이후를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인욱을 키우려 했던 것이나 왼손 구원투수 권혁의 컨디션 회복을 위한 2차전 투수 기용에도 불만을 나타내는 팬이 많다.

상대적으로 SK 김성근 감독은 1·2차전 모두 왼손 중간 계투를 적극 활용하며 삼성 타선을 잘 막았다. 또 야수들의 수비 위치를 타자에 따라 적절히 변경하는 수비 시프트(shift)로 재미를 보고 있다. 포스트 시즌 사상 첫 '야신(野神)'과 '태양'의 대결에서 태양은 빛을 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