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위해 세상을 앓던 시대의 어른"

'머리에 붕대를 감고 세상을 앓던 사람/ 그 육신은 사로잡혀 적(赤)의 볼모가 되었지만/ 그니가 우리의 둘레를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슴마다에 새겨진 그니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박남수의 시 '세상을 앓던 사람' 중에서)

일제시대 민족의 독립과 번영을 위해 헌신했고, 광복 후에는 공산당에 맞서 싸우다 순국한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1883~1950) 선생의 60주기 추모식 및 전기 출판기념회가 선생의 기일(忌日)인 18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사)고당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방우영 이사장을 비롯해 승병일 광복회 부회장, 박용옥 이북5도위원장, 백선엽 육군협회장, 우무석 국가보훈처 차장 그리고 고당의 3남인 조연흥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방우영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고당 선생은 서울로 내려가라는 동지들의 계속되는 권유를 마다하고 '나는 죽으나 사나 평양을 떠날 수 없다. 이북 동포들과 함께 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말씀을 남기셨다"며 "지금 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김일성 일가의 3대 왕권 세습과 60년 동안 억압받고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보면 왜 고당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산 세력과 맞서 싸웠는지, 그 정신과 기개를 다시 새겨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추모식은 김관선 산정현교회 목사의 기도에 이어 김유선 시인(장안대 교수)의 '제이·엠·에쓰'(김소월 지음)와 '세상을 앓던 사람' 시 낭송으로 진행됐다. '제이·엠·에쓰'는 조만식이 교장이던 시절 오산학교를 다닌 김소월이 훗날 고당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로 제목은 조만식의 영문 두문자(頭文字)에서 따왔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고당에게는 꿈이 있었다'란 추모 강연에서 "고당 선생은 새로운 미래를 향한 꿈을 잃지 않았기에 항일운동과 반공정신이 밑바탕 된 높은 차원의 애국심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추모식에 이어 고당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가 최근 출간한 고당 전기 '북한 일천만 동포와 생사를 같이하겠소'(기파랑)와 추모 강연집 '고당 정신과 나라의 앞날'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북한 일천만…'은 1966년에 평남민보사가 고당과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펴낸 '고당 조만식'을 중심으로 이후에 나온 서적들과 비밀 해제된 소련 문서 등을 참고했다. '고당 정신과…'는 김재순·노재봉·신용하·김동길·신일철·박세일·김영호씨 등 각계 19명의 강연문을 담았다.

김학준 동아일보사 고문은 축사에서 "우리 민족 역사의 과제였던 '빈곤' '착취' '쇄국' '세습'을 대한민국은 청산한 반면 북한은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보면서 공산주의자와 소련군에 맞서 굳건히 싸운 고당의 선견지명을 새롭게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만식 선생은 일제시대 오산학교 교장, 평양YMCA 총무, 숭인중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물산장려운동과 신간회운동을 주도했으며 조선일보사 사장으로 재직했다. 광복 후에는 조선민주당을 창당하고 신탁 통치 반대운동을 벌이다 연금됐으며, 6·25전쟁 중인 1950년 10월 평양형무소에서 후퇴하던 인민군에 의해 순국했다. 정부는 1970년 선생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