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컹컹 으르렁… 우범자 얼씬 못해요"

지난 17일 밤 10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일원파출소 앞에서 애견용품점 주인 이인재(43)씨가 10살배기 말리노이즈종 개 알버트와 서서 순찰 신고를 했다. 알버트는 '수서경찰서 순찰견'이라고 쓴 조끼를 입고 있었다. "알! 앞으로!" 이씨가 명령을 내리자 알버트가 귀를 쫑긋 세우고 어둠 속으로 튀어나갔다.

이씨와 알버트 콤비는 강남구 개포동과 일원동 으슥한 골목길들과 공원 10여 곳을 1주일에 4일, 오전 1~2시까지 순찰하고 있다. 벌써 6개월째다.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까지 보육원에서 자란 이씨는 가출과 싸움을 밥 먹듯 하다가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스스로 '개 같은 인생'이라고 자조할 때였다. 그는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도 150만원짜리 도베르만을 키울 정도로 개를 좋아했다. 개를 훈련하는 게 취미였다.

개를 잘 다루던 이씨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애견협회와 한국애완동물보호협회가 주최하는 개 훈련대회에 출전해 7차례나 우승했다. 알버트는 2001년부터 3년 연속 우승컵을 안겨 준 개다. 이씨가 키운 셰퍼드는 1996년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때 경호 업무에 투입되기도 했다. 이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기르던 진돗개 2마리를 맡아 훈련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2000년에는 개 조련사 1급 자격증을 땄다.

이씨는 2000년부터 제주도에서 애견훈련소를 운영하다가 지난 2월 상경해 일원동에서 애견용품점을 차렸다. 그런데 그때부터 명견(名犬) 알버트가 갑자기 애물단지가 됐다. 동네 산책하러 나가면 큰 개(45㎏)가 무섭다며 경찰서에 10번 넘게 신고가 들어갔다. 목줄을 맸고 명령을 내리기 전에는 짖지도 않는 알버트였다. 이씨는 "우리 개는 아무 잘못도 한 게 없는데…"라며 답답해했다.

참다못한 이씨는 "수서경찰서장에게 항의하겠다"며 지난 5월 파출소를 찾아갔다. 난감해하던 김태완(48) 일원파출소장이 손뼉을 치며 이씨에게 제안을 했다. 명예경찰관 신분으로 개와 함께 방범 활동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좋은 훈련 기회라고 생각한 이씨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씨는 파출소에서 마련해 준 '특별방범' 조끼와 모자를 쓰고 알버트는 순찰견 조끼를 입고 나가자 시민들은 더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김 소장은 "개 때문에 주민들과 마찰이 많았던 이씨가 지금은 지역에 봉사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했다.

관할 지역 8만9000여 세대를 순찰차 3대로 관리했던 파출소 입장에서도 이씨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매일 쓰는 이씨의 순찰일지에는 밤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 50여 명의 이름과 전화번호, 신체적인 특징을 적은 메모가 빼곡하다. 김 소장은 "취객들의 폭행 시비도 줄었고, 특히 지난 6개월 동안 청소년 범죄 신고 건수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80％나 줄었다"고 했다.

이씨와 알버트는 지난 9일 오토바이 절도범 4명을 붙잡았다. "알! 잡아!" 이씨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알버트가 쏜살같이 쫓아가자 도망가던 중학생들이 "살려주세요! 아저씨!" 하며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이씨는 "그 중학생들은 요즘 눈만 마주쳐도 '아저씨, 지금 집에 들어가고 있어요'라고 대답한다"며 흐뭇해했다.

밤 근무를 오래하다 보니 이씨의 몸무게도 6개월 사이에 20㎏이 빠져 60㎏이 됐다. 가출 청소년을 볼 때마다 옛 생각이 나 '인생상담'을 해주다 보니 순찰시간은 오전 2~3시를 넘기기 일쑤다. 이씨는 그렇게 만난 청소년 20여 명을 모아 'FC 알버트'라는 축구팀을 만들었다. 인터넷에는 '알버트 팬카페'도 생겼다. 독신인 이씨는 알버트를 쓰다듬으며 "기분에 따라 친구도 되고 부모도 되는 인생의 동반자"라며 "요즘은 관리만 잘하면 개도 20살까지 끄떡없이 산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검증된 순찰견을 보급해 서울 시내 전역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일원파출소는 오는 21일 경찰의 날을 맞아 이씨에게 감사패를 수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