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꽃 황금꽃… 生과 死의 향기

전수천은 개인전 〈사물로부터 차이를 읽다〉에서 새 작품인 '꽃 사진' 시리즈를 들고 나와서인지 오랫동안 부스스하게 길렀던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그는 "작품을 할 때마다 절벽 끝에 선 느낌으로 고민한다"며 힘들었던 심경을 내보였다.

그가 새롭게 보인 '꽃 사진'은 화려하게 만개한 꽃이 일부는 흑백으로, 일부는 색깔을 입고 있다. 꽃만으로도 화려한데 흑백과 색이 대비되면서 긴장감을 불러온다. 작가는 "사진 안에는 생화(生花)와 조화(造花)가 섞여 있다"면서 "관람객이 어떤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가려보도록 했다"고 말했다. 관람객은 생화와 조화를 가려내려고 애쓰는 것이 게임 같기도 하고, 생화와 조화 모두 아름답다고 여기기도 한다. 각자가 가진 프리즘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작품을 즐길 수 있다.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거울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세운 설치 작품 〈잃어버린 미로의 파라다이스〉는 보다 적극적으로 관람객의 참여를 요구한다. 황금색으로 칠해진 꽃 기둥이 위압적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노골적이기도 하다. 황금꽃은 죽음과 부귀를 나타낸다. 검은 공간에 떠 있는 황금꽃이 상여를 떠올리기도 하면서 생(生)과 사(死)를 동시에 의미한다. 작가는 "파라다이스를 찾기 위해선 미로(迷路)를 헤매야 하는데 헤매는 시간 자체가 중요하다"면서 "요즘은 아예 파라다이스가 없어졌다며 파라다이스를 찾는 꿈조차 포기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수천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사람의 정신을 상징한 토우(土偶)와 산업폐기물을 등장시켜 물질적 풍요 속의 정신적 빈곤을 비판했다. 이번에는 생화와 조화를 등장시켜 사람들이 점점 잃어버리는 꿈과 감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시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표갤러리 본관에서 11월 6일까지 열린다. (02) 543-7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