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線 사이로 천재성이 '번뜩'

소마미술관이 열고 있는 〈한국 드로잉 30년: 1970~2000〉전(展)은 드로잉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보기 위해 마련됐다.

1970년대 이후 국내 작가 70명이 남긴 300여점의 드로잉을 통해 작가들의 고민과 창조적 아이디어를 넘어 한국 미술의 깊이와 폭을 가늠해볼 수 있다. 70명의 출품 작가 대부분이 유명 작가들이어서 화려하다.

드로잉은 작가들이 가진 사고의 영역과 번뜩이는 직관을 자유롭게 펼친다는 것이 강점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드로잉이 밑그림이나 습작 정도로 치부돼 중요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한국에서는 드로잉이 중요성에 비해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마미술관은 이처럼 과소평가되는 드로잉에 대한 시각을 개선하기 위해 국내 최대 규모의 드로잉 전시를 마련했다.

육근병의 드로잉은 작가가 참가한 카셀 도큐멘타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 드로잉이다. 작가가 세계적인 전시를 앞두고 어떤 것을 고민했는지 일단을 보여준다. 박이소의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한 드로잉 1994〉도 참가 작품을 구상 중인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드로잉에는 작가가 쓴 것으로 보이는 '도토리 키재기'라는 글귀도 있다. 오원배와 손상기의 드로잉은 각각 1971년과 1981년 서울 풍경을 드로잉한 것으로 작가의 체취가 묻어난다. 고단한 삶을 살다 작고한 손상기의 〈공작도시〉 드로잉은 작가의 어려웠던 환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드로잉은 간단한 선(線)으로 많은 것을 말하는 힘이 있다. 최욱경의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와 윤석남의 〈최승희를 위한 드로잉〉은 페미니즘적인 터치와 함께 강한 개성을 보여준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인 백남준의 〈고지도〉는 작가의 지구적 스케일과 유머, 천재성을 보여준다.

전시 중인 드로잉 중 눈길을 끄는 것은 현대중공업 유조선의 실제 설계도다. 고도의 정밀함과 기계공학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드로잉'의 의미를 확장한다.

소마미술관은 200명에 가까운 작가들의 드로잉을 자료화한 드로잉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매년 드로잉센터 작가 공모를 통해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드로잉을 통한 실험정신을 선보인다. 공모에서 선정된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는 소마드로잉센터 아카이브에 보관되며, 관람객은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다.

〈한국 드로잉 30년〉전은 11월 21일까지 열린다. 입장료 1000~3000원. (02)425-1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