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마주친 天敵

〈제1보〉(1~15)=이번 제15회 LG배 16강전 여덟 판 중 가장 큰 화제를 불렀던 대국을 돌아볼 차례다. 짜릿한 결과와 함께 바둑 내용도 한 판의 활극영화를 보듯 흥미진진했다. 천적(天敵)론에 불을 지핀 것도 이 바둑이었다. 올해 2월 제2회 비씨카드배 16강전서 맞서 안조영이 백으로 반 집을 이긴 이후 두 번째 만남. 당시 랭킹은 안조영이 한국 11위, 구리는 중국에서 쿵제(孔杰) 다음 자리인 2위였다.

현대 바둑에 있어 항상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초반 포석이 거의 정형화돼 가고 있다는 점. 자유롭고 창조적인 발상으로 매 판 전혀 다른 '밑그림'을 그리던 20~30년 전 프로바둑과 달리 같은 포진이 자주 반복된다. 9까지도 눈이 아플 정도로 보아온 포진. 이후 백은 14 자리로 벌리다가 10으로 11을 유도 후 12에 붙이는 형을 개발, 역시 자주 애용 중이다.

12로 참고도 1은 6까지 흑이 만족스럽다(이제 백A면 흑은 B로 받는다). 구리는 우하귀를 미결로 남겨두고 먼저 15로 걸친다. 선착권(先着權)을 가진 흑은 항상 이렇게 바둑을 자기 페이스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게 자랑이다. 쌍방 노 타임(1분 이내 착점)으로 진행되던 바둑이 여기서 처음 뜸을 들인다. 안조영의 눈길이 우하귀에 박힌 채 시간은 한없이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