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두 갈래 길

 

 

〈제2보〉(15~34)=안조영(31)은 대한민국 240여 프로들 중 '모범생' 얘기만 나오면 언제나 첫손에 꼽히는 기사. 인품뿐 아니라 기량적 측면에서도 감각, 수 읽기, 전투력, 계산력, 신중함 등 모든 항목에서 합격점을 인정받는다. 그것이 10년 가까이 10위권을 유지한 비결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격 기전 우승은 단 한 차례에 그쳐 최정상의 벽도 동시에 절감해왔다. 잠시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기사들이 A학점과 '낙제 학점'을 오갔다면 안조영은 '전 과목 B학점'쯤에 해당할까.

15로 참고도 1~5로 결정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 백이 A로 젖혀올 경우 응수가 난처하기 때문. 그럴 바엔 아예 손을 빼 좌상귀 25까지의 정석을 택하고 칼자루를 상대에게 넘긴 것. 백이 흑15 때 3분여나 숙고한 것도 곧 돌아올 선수(先手)를 우하귀에서 어떻게 행사할지 검토한 시간이었다.

백26의 맞끊음은 당연. 흑도 각오하고 있었다는 듯 27, 29로 위 아래 한 방씩 두들긴 뒤 31로 밀어간다. 이렇게 되면 34까지는 외길인데 그다음 수를 놓고 흑은 두 갈래의 길에 섰다. '가'에 두어 귀를 챙길 것인가, 아니면 '나'로 꼬부려 바깥쪽에 힘을 집중할 것인가. 하지만 구리는 여기서도 여전히 빠른 손길로 흑돌 하나를 집어 씩씩하게 반상(盤上)으로 향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