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표… 표창장… 평생 모은 기록물 303점 박물관 기증

"어렸을 적 내 성적이 다 나와 있네. 요즘으로 말하면 통지표야. 우리 때는 통신표라고 불렀지."

2013년 현 문화체육관광부(서울 종로구 세종로) 자리에 세워질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가장 많은 기록물을 기증한 이무상(73)씨가 63년 전 받은 '통신표'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세로쓰기에 모두 한자다. 1947년 7월 25일이 '檀紀 四二八十年 七月 二十五日(단기 4280년 7월 25일)'이라고 돼 있다.

평생 모은 기록물 303점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모두 내놓은 그는 다시 '통신표'를 가리키며 "'이흥재'라는 사람이 (통신표를) 안 찾아간 모양이지? 이름에 줄 쫙 긋고 내 이름을 썼잖아. 종이가 부족해 다른 학생 통신표를 재활용한 거야"라고 했다. 그가 보여준 자료들은 대부분 누렇게 바랬지만, 헤진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보관상태가 좋았다.

"평생 손때 묻은 것들이라 아깝기도 하고, 하찮은 것들이 무슨 도움 되겠나 싶어 처음엔 고민 많이 했어. 그런데 대단할 것 없는 한 사람의 인생이지만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그가 기증한 자료마다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다. 이씨는 "1959년 제헌절에 공주경찰서장으로부터 받은 '모범 대학생' 표창장으로 다음 해 4·19혁명 때 잡혀간 대학 친구 20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공주경찰서장이 이씨를 보더니 친구들을 풀어줬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통신표'는 은사로 하여금 그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준 징검다리가 됐다. 이씨가 창덕여중 교사로 일할 때 초등 1학년 시절 담임이 교장으로 부임했다고 한다. 이씨가 "찾아뵙지도 않다가 인사를 드리려니 죄송하다"며 책상 위에 통신표를 올려놓았더니 은사가 "아, 이게 너냐"며 웃었다고 한다.

이씨는 "고등학교 때까지의 자료수집은 어머니 공이 컸다"며 "어머니는 6·25 전쟁 통에도 자식들 기록들을 가장 먼저 챙기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1·4후퇴 때 뒷산에 구덩이를 파고 아주 큰 항아리 3개를 묻었다. 그 안에 형제들이 받아온 성적표와 상장 등을 넣었다고 한다.

이씨는 6살 때부터 물건들을 수집했다. 첫 대상은 성냥갑이었다. 너무 많아져 집 한구석에 쌓아두었다고 한다. 우표도 모았다. 이씨는 "성냥갑과 우표 따위를 노끈으로 묶어 군대 가기 전 곳간 깊숙한 곳에 넣어뒀는데, 제대하고 와 보니 이사하면서 일꾼들이 쓰레기인 줄 알고 버렸더라"고 했다.

"그냥 쌓아두면 결국은 버려질 수도 있는 물건들이잖아. 다 내놓았지만 조금도 아깝진 않아. 게다가 앞으로 누가 됐건 신기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봐주면 얼마나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