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匠의 갈지(之)자걸음 사라진 고발정신

탐욕의 화신인 주인공 게코(마이클 더글라스)도 아마 이런 어정쩡한 봉합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21일) 개봉하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Wall Street: Money Never Sleeps)'는 이번 주 최대의 화제작. '플래툰' 'JFK' '7월4일생' 등 메시지 강한 사회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올리버 스톤이 2008년 미국 경제시스템의 대붕괴와 글로벌 경제위기의 원인을 파헤치겠다고 공언하면서 제작 초기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주 개봉작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극장(약 270개)을 잡았고, 모든 상영작을 통틀어 가장 높은 예매점유율(23.1%·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20일 현재)을 확보한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는 미친 듯 널뛰기하는 코스피나 다우존스 주가만큼이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사회 비판과 휴먼드라마 사이에서 갈지자걸음을 반복한다. 23년 전 마이클 더글라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줬던 같은 감독의 동명 전작 '월 스트리트'(1987)에 감명받았던 관객이라면, 더욱 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인공은 우리의 게코. "자본주의의 원동력은 탐욕"이라며 자신과 월 스트리트의 욕망을 정당화하던 1980년대의 투기꾼은 속편의 스크린에 존재하지 않는다. 주식 내부자 거래 등의 이유로 8년 복역을 마치고 출옥한 뒤 개과천선(改過遷善). 투기를 비판하는 책을 내고 대학교에 강연을 다닌다. 왕년의 월 스트리트 스타는 흰 머리를 휘날리며 젊은 후배들에게 일장 연설 중. 객석에 앉아 있는 게코의 팬 중에는 투자회사의 신예 제이콥 무어(샤이아 라보프)도 있다. 무어는 시민단체 운동가인 위니(캐리 멀리건)와 약혼한 사이다. 공교롭게도 위니는 게코의 딸이다. 피도 눈물도 없던 젊은 시절 아버지와 의절하고, 과격한 좌파 뉴스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리만브라더스나 JP모건의 몰락을 연상시키는 영화 초반의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 광풍을 차용한 비유와 설정, 그리고 노련한 마이클 더글라스와 패기의 샤이아 라보프가 보여주는 리드미컬한 연기 호흡은 이 영화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특히 위트와 유머, 여유가 결합된 마이클 더글라스의 강연 연기는 전반적으로 '야심 과잉'으로 보이는 이 영화에서 보기 드문 명장면이다.

"여러분은 이제 끝장났어요. 아직 모르겠지만 여러분 세대는 수입, 직장, 자산이 없는 최악의 세대.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세상은 더 탐욕스럽게 변했죠. 사실, 우리 모두가 공범이에요. 은행과 소비자들이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그냥 돈이 아니에요. 스테로이드 주사 맞은 돈인 겁니다…."

하지만 위풍당당하게 시작했던 전반의 기세는 중반 이후 샤이아 라보프의 캐릭터가 입체성을 상실하면서 상당히 풀이 꺾인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야망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욕망으로 가득했던 23년 전 '월 스트리트'의 찰리 쉰과 달리, 2010년의 샤이아 라보프는 악(惡)이 거세된, 거의 순백에 가까운 인물이다.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투자은행 대표 루이스(프랭크 란젤라)의 복수를 감행할 때조차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후반 들어 영화의 주제가 냉혹한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해부였는지 아니면 자식과 아버지 간의 화해였는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급격한 방향 전환은, 그동안 올리버 스톤이라는 이름 때문에 영화를 선택했던 관객들의 신뢰마저도 뿌리째 흔들리게 할 만큼 느닷없다.

이 영화의 마무리에 스튜디오가 편집권을 행사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고 하더라도, 이제 거장으로 대우받는 감독 입장에서는 "비겁한 변명" 소리를 듣기 십상일 것이다. '플래툰'과 'JFK' 그리고 '7월4일생'에서 보았던 빛나는 연출과 날카로운 고발정신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