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세에 새로 배운 그림으로 개인전까지 연 강순용씨
입력 : 2010.10.22 23:08
강씨는 금난초, 은난초, 한라새우난초 등 제주에서 나는 희귀한 난뿐만 아니라 제주의 초가집과 한라산의 풍광까지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개인적인 인연으로 전시회에 들렀던 오승우(80)화백은 “어디서 이런 소재를 찾았느냐”며 “훌륭하게 잘 그렸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이제 그림은 강씨의 ‘제2의 인생’이라는 화폭을 각양각색으로 채우고 있다. 그는 “사랑하던 아내를 잃고 두 가지를 얻은 일에 감사한다”며 “하나는 그림을 그리게 된 것과 하나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죽는 순간에도 붓을 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85세의 나이에 생전 처음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5년 만에 자신의 개인전을 열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강순용(90)씨. 그가 5년 전 그림을 배우기로 결심했을 때, 그림에 관해서는 문외한(門外漢)이었다. 70여년 전에 초등학교 시절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려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강씨는 5년 만에 자신의 개인전을 열 정도로 그림 실력이 늘었다. 그는 서울 종로의 한 갤러리에서 “한라산에 핀 난(蘭) 시리즈 및 자연의 표현”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20일부터 일주일간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림을 배우던 시절부터 그린 그림 40여점을 전시했다. 이제 어엿한 화가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셈이다. 갤러리 관계자는 “취미로 그림을 배운 아마추어 화가가 개인전을 여는 경우는 적지 않지만 85세에 그림을 배워 5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전시회에 온 자녀와 지인들은 강씨의 그림을 보면서 “언제 이렇게 그림을 배웠느냐”면서 감탄했다. 강씨는 “처음 그림을 배울 때는 소일거리 정도로 생각했지만 배우다 보니 실력이 붙은 것 같다”며 “그림을 본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이렇게 개인전까지 열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그림을 배울 때만 해도 개인전까지 열 줄은 몰랐다. 그저 60여년 동안 함께 살던 아내가 5년 전 세상을 떠나고 갑자기 닥쳐온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전까지 강씨는 광고회사와 전자회사 등에서 사무직으로 일한 평범한 회사원이었을 뿐, 그림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해방 전 일본에서 유학할 때 그림을 자주 보기는 했지만, 그것도 한참 전의 일이었다.
강씨는 “허리디스크도 있고 다리도 불편한 것이 그림 그릴 때 가장 큰 장애였다”고 말했다. 다행히 시력도 여전히 좋은 편인데다가 혈압이나 당뇨 등 다른 건강 문제가 없을 정도로 건강관리를 잘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원래 재능이 있었던 덕분인지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다. 지도를 해주던 교수들이 “곧잘 그린다”고 칭찬을 해줬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강씨는 처음에 수채화를 배우려 했지만, 수채화는 그림을 그리다 실수를 하면 수정이 어려웠다. 게다가 특성상 수채화는 데생 단계에서 작업이 중요한데 80세가 넘은 몸에 떨리는 손으로 하는 데생은 한계가 있었다.
결국 유화로 방향을 돌렸다. 강씨는 “유화의 풍부한 질감이 마음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덧칠을 통해 수정도 비교적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림 실력이 늘면서 욕심이 생겨 홍익대 대학원 미술 실기과정까지 수료했다. 완성된 작품을 미술대회에 출품해 입상하기도 했다. 2009년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면서 총장상을 받기도 했다. 인생의 황혼에서 찾은 ‘제2의 인생’이 결실을 본 것이다.
수료 후에도 아마추어 화가들의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개인전을 열 기회가 생기자 강씨는 “아마추어 화가인데다 대가도 아니니 좀 더 특색있는 것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난’을 주제로 택하기로 했다. 조카인 난 연구가 이경서(69)씨가 도움을 줬다. 이씨는 제주도의 야생한 전문 사진가이자 제주생태사진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