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性범죄 고민하다 인형 집어들었죠"

"꺅! 우리 나쁜 사람 아니니까 잡아가지 마세요."

지난 19일 서울 등현초등학교 시청각실. 정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들어서자 1학년생 150여명이 장난치듯 소리쳤다. 경찰관 3명은 무대 위의 탁자 뒤로 돌아가 숨었고 잠시 뒤 50㎝ 크기의 손인형 세 개가 탁자 위에 올라왔다. 학생들의 시선은 인형들에 쏠렸고 실내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선생님 역할을 하는 인형이 "우리 몸은 소중해요. 누군가가 보여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라고 별남이(남자 인형)와 한별이(여자 인형)에게 물었다. 두 인형이 "싫어요! 안돼요! 하지 마세요!"라고 외치자 학생들도 "안 돼요!"라며 따라 외쳤다.

40분 뒤 인형극이 끝나고 탁자 뒤에서 경찰관 3명이 나와 인사하자, 학생들은 시청각실이 떠나갈 듯 박수를 쳤다. 서울 강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경찰관들이다.

경찰관들은 이날 어린이 성범죄 예방교육을 위한 3막짜리 인형극을 공연했다. 벌써 다섯 번째다. 1막에서는 '아이스케키(여자아이 치마 들치며 내는 감탄사)'와 같은 장난을 예로 들며 "각자의 중요한 신체부위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가르쳤고, 2막과 3막에서는 사례를 들며 아동 성범죄자 대처요령과 사후 대처방법을 설명했다. 2막에선 학원 가던 별남이가 "게임기 줄 테니 집으로 가자"며 유인하는 아주머니를 만나 대처하는 내용을 인형극으로 표현했고, 3막에선 놀이터에서 놀던 한별이에게 동네 오빠가 접근해 "사람 없는 곳에서 몸 만지기 놀이하자"고 할 때 피하는 요령을 보여줬다.

강서경찰서 박동수 생활안전과장(50)은 "아동 성범죄는 범죄자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이 경찰서 여성청소년계장인 최수선(46) 경위가 인형극을 제안했다. 최 경위는 "지난 6월 김수철 사건 이후 아동 성범죄를 막기 위해 비디오를 보여주고 그림판을 만들어 설명도 해 봤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며 "그래서 고안한 게 인형극"이라고 했다.

경찰관들이 인형을 들고 연기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처음 한 달 동안 점심·저녁 식사시간을 쪼개 인형극 연습에 몰두했다. 경찰들은 쭈그리고 앉아 팔을 올리고 인형을 조작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허리 통증도 생겼고, 손가락으로 인형의 표정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별남이 역을 맡고 있는 신세계(30) 순경은 "처음에는 이게 될까 싶었지만 아이들이 웃으니까 아기자기한 것도 제법 잘할 수 있게 됐다"고 웃었다.

이날 인형극을 본 1학년생 전상아(7)양은 "성폭행 그런 게 무서웠는데 어떻게 피해야 할지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라고 했다. 등현초 류선순(49) 교사는 "아이들 수준에 맞게 재밌게 인형극을 해줘 학생들이 더 집중을 잘하는 것 같다"며 "아이들이 경찰에 대한 친근감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