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마라톤] 우울증에 시달리던 30代 세상과 맞설 힘을 되찾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네. 마라톤을 하다 보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지. 그걸 달래가며 골인 지점을 향해 달리듯 인생에서 만나는 어려움도 그렇게 극복해가는 거라네." 연세대 의대 정신과 이홍식(59) 교수가 다리를 절룩이며 김세웅(가명·31)씨에게 말했다.

"걸어서라도 끝까지 가겠습니다. 무릎이 아프지만 어떡해서든 완주해내야죠." 온몸이 땀으로 젖고 오른쪽 무릎에 물리치료용 테이핑을 한 김씨가 이 교수를 보며 환히 웃었다.

두 사람은 작년 10월 환자와 의사로 만났다. 전문직 종사자인 김씨는 과다한 업무와 인간관계 스트레스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자신감을 잃었어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을 설치기 일쑤였지요." 한 달여간 불면증에 시달리며 몸무게도 5㎏ 이상 빠졌던 김씨는 올 9월까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상태가 호전되는 듯하다가 다시 우울증이 재발했다. 김씨는 결국 지난달 회사를 휴직했다. 그때 이 교수가 김씨에게 권한 게 춘천마라톤 참가였다.

지난달 30일 김씨와 한강변을 따라 3시간30분가량 15㎞를 함께 걸으며 상담한 뒤였다. 이 교수는 "장시간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 '동적(動的) 명상'을 하면 잡념이 사라지고 불안이 완화되는 항우울증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도 "걷고 나니 훨씬 편안하고 긴장이 많이 풀렸다"며 "복잡하게 얽혔던 생각이 단순해지고 잡념이 사라져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김씨에게 치료법을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10월 들어 이 교수와 김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15~20㎞씩 한강변을 달렸다. 10일과 17일엔 미사리와 여의도에서 열린 마라톤대회 하프 코스를 완주했다. 차츰 자신감을 찾은 김씨는 풀코스 완주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이날 반환점을 지나며 이 교수가 발바닥과 다리 통증을 호소했다. 풀코스 도전이 처음인 김씨도 걷다가 뛰기를 반복했다.

김씨가 반환점 부근 급수대에서 물과 간식을 집어 이 교수에게 건넸다. 물을 받아 든 이 교수가 말했다. "여기까지 함께 왔으니, 이제부턴 자네 혼자 먼저 가게. 체력과 정신력으로 뛰는 거야. 떠오르는 생각을 억지로 막으려 말고 즐기라고!"

이들의 반환점 통과 시간은 이미 3시간20분이 넘었다. 하지만 기록은 무의미했다. "자네가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며 완주하면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일은 없을 걸세. 그러면 더 이상 약물치료도 필요 없고, 나를 만날 일도 없을 걸세."

김씨는 "선생님, 걱정 마세요. 이젠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무리하지 마시고 천천히 오세요"라고 말했다. 김씨가 손을 흔들며 이 교수를 앞서 달려나갔다.

이날 김씨는 5시간 40분 34초, 이 교수는 6시간 32분 31초 만에 완주했다. 결승점에서 기다리던 김씨는 이 교수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선생님, 저 스스로가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