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LG배 세계기왕전] 百年戰爭

〈제5보〉(70~87)=구리는 훤칠한 체격과 호방함을 겸비한 기사. 바둑만 시원시원한 게 아니고 말술(斗酒)불사의 주량에 축구 등 스포츠에도 만능이다. 이번 LG배 전야제에서 사회자가 임전소감을 묻자 구리는 "연초 비씨카드배에서 안조영에게 패한 뒤 슬럼프에 빠졌었다. 이번 대회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겠다"고 쾌활한 표정으로 다짐했었다. 물론 안조영에게 직접 '복수'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리는 다음 날 첫 판서 난적 이세돌을 꺾은 뒤 2회전 추첨에서 운명처럼 또다시 안조영을 만났다.

우하귀에서 패싸움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78 용패(用覇) 때 79로는 팻감만 생각한다면 85에 잇는 게 낫다. 하지만 그 자체로 굴복인 데다, 웬만해선 눈앞의 손해를 감수하지 않는 것이 프로들의 속성이다. 이때 팻감으로 들여다본 81은 실수. 참고도처럼 백 요석(要石) 4점을 생포할 수 있는 수단을 스스로 없앴다.

잠시 반상(盤上)을 둘러보던 구리, 87로 치중해 간다. 물론 이것도 팻감이다. 고수(高手)들의 패(覇)싸움은 대체로 철군(撤軍) 명분만 주어지면 싱겁게 끝나곤 한다. 하지만 지금 둘의 손길로 봐선 절대 양보할 기세가 아니다. 이 '백년 전쟁'의 종착점은 과연 어디일까. (74 80 86…△, 77, 8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