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목소리… 군대 얘기마저 달콤했다

군대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기합 든 사람과 기합 든 척하는 사람. 성시경(31)은 명백히 후자였을 것이다. 선후배 관계가 뚜렷한 대중음악계에서도 절대 기합 들지 않는 이 사내는 군 생활도 요령있게 잘 해낸 듯했다. 지난 5월 만기제대한 뒤 최근 대형 콘서트로 음악계에 복귀한 그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입대를 앞둔 2년 반 전 인터뷰 때 초췌해 보이던 얼굴은 해바라기처럼 활짝 폈고, 특기인 입담의 기세는 천장을 찌를 듯했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1군사령부에서 근무했어요. 군악대에서 알토 색소폰을 연주했죠. 색소폰은 군대 가서 배웠어요. 하라면 해야죠."

성시경은 자대 배치 사흘 만에 군 관련 행사 무대에 서라는 지시를 받았다. 제대할 때까지 온갖 무대(또는 회식자리 등등)에서 노래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장교의 지시를 받고 완곡히 사양했어요. '연예병으로 가지 않은 것은 야전에서 군 생활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자대에 오자마자 노래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습니다.' 이등병이 말이죠." 장교는 의외로 "너 멋있는 놈이구나. 그래, 열심히 군 생활 해"라며 지시를 취소했다. 그러나 행사 당일 다시 그를 불렀다. "가야겠다."

전방에서 근무하는 병사들 앞에 설 때는 뿌듯했다. 특히 원주보다 겨울 기온이 10도씩 낮은 화천이나 양구의 부대에 갈 때는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병사들 앞에서 '소녀시대가 와야 하는데 늙은 발라드 가수가 와서 미안하다. 국군 가운데 여러분들이 가장 고생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면 엄청난 환호가 터졌어요. 그러면 저는 '이제부터 월 8만원짜리 고품격 발라드 서비스를 해 드리겠다'며 노래를 불렀죠." 사병 월급이 8만원가량이다.

늙은 이등병을 괴롭히는 고참도 있었을 것이다. 성시경은 "그런 얘기는 나중에"라며 "군대 이야기는 쓰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러나 어느새 군대 이야기로 돌아가곤 했다. 군필자 누구나 겪는 증후군이지만 그의 경우는 좀 각별해 보였다.

그는 미국의 군악축제 '버지니아 인터내셔널 타투(Virginia International Tattoo)' 참가를 가장 인상적인 경험으로 꼽았다. 16개국 군악대가 갖가지 공연을 하는데, 한국이 피날레를 장식할 만큼 인기 높았다. "미국 해병대가 장엄하고 절도 있는 공연을 할 때 정말 소름이 쫙 끼쳐서 완전히 닭이 돼버렸어요. 그게 끝나자마자 장내 스피커에서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하는 소리와 함께 '빼배~'하고 태평소가 울더니 상모 돌리고 꽹과리 치고…. 관객 2만명 정신을 쑥 빼놓더라고요. 정말 자랑스러웠죠."

군대 이야기라면 수십 년 전 일도 (남자들은) 재미있는데, 성시경의 따끈따끈한 군대 이야기는 포복절도할 만큼 재미있었다. 그와 육군의 입장을 고려해 낱낱이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성시경이 자리를 비운 2년간 그의 활동 무대 중 하나였던 TV는 댄스그룹이 장악했다. "예전엔 로커들도 간간이 나오고 기타 치는 사람들도 나왔는데 요즘은 너무 없더라고요. 제가 거기 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그는 "나는 아이돌이 싫지는 않다"며 "다만 그들과는 직업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는 뜻이다. 그는 최근 아이유와 함께 부른 싱글 '그대네요'를 발표했다.

"미국에서는 작년 공연 수익 1위가 U2, 2위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에요. 왜 우리는 그게 안 될까요?" TV 오락프로그램도 마다치 않는 그의 문제 제기로는 조금 의외였다. "어렸을 때는 제 소속사가 그런 걸 많이 시켰죠. 지금은 음반·공연 홍보 수준이에요. 그리고 왜 TV와 공연 두 가지 다 하면 안 되죠? TV 나오면 음악 못하는 건가요?" 그러면서도 그는 "사실 연예인 노릇 하느라 데뷔 후 10년간 나에게 투자를 많이 못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성시경은 "프랭크 시나트라, 배리 매닐로우, 마이클 부블레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노래로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름들이다.

그의 복귀 공연은 사흘간 1만8000명이 찾아오는 대성황이었다. 그는 "슬픈 노래 감정 잡기가 힘들 만큼 행복했다"고 말했다. TV와 공연을 모두 해야 할지 그리고 한국의 프랭크 시나트라가 될 수 있을지, 결국 해답은 예비역 병장 성시경의 몫이다.

[블로그] 군대 갔다 2년만에 돌아온 성시경표 발라드에 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