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상처 '예술'로 아물다

지난 8일 독일 베를린 메세지역에서 열린 아트페어 '아트포럼 베를린' 전시장. 독일의 젊은 화가 중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꼽히는 네오 라우흐의 대형 작품이 걸린 아이겐아트 갤러리 부스 등 25개국에서 100여개의 갤러리가 참가하고 있었다. 주말 오후여서인지 전시장은 전문 컬렉터와 아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아트포럼 베를린'은 지난 1995년 시작된 아트페어로, 베를린이 통독 이후 독일 미술의 중심지로 부상하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아이겐아트 갤러리의 한 관계자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판매 실적이 좋아 만족스럽다"며 "갈수록 '아트포럼 베를린'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화가 피터 롤니씨는 "매년 '아트포럼 베를린'을 찾는데 올해는 작품이 작년보다 더 다양해져 흥미롭고 다른 나라에서 온 관람객도 많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독일 미술의 양대 축이 쾰른과 뒤셀도르프였는데 통독 이후 베를린이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화랑협회도 지난 1월 쾰른에서 베를린으로 본부를 옮겼다. 독일 정부는 통독 이후 베를린을 미술을 중심으로 한 문화도시로 가꾸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는 독일문화원이 '아트포럼 베를린' 개막식에 맞춰 54개국에서 57명의 미술관장·큐레이터·미술평론가·컬렉터·기자를 초청해 베를린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행사와 활동을 안내했다. 이들은 '아트포럼 베를린'을 비롯해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한 '프리뷰 베를린(Preview Berlin)' 등 연계된 아트페어와 갤러리, 미술관을 방문했다.

베를린의 주요 아트페어가 열리는 '시즌'에 맞춰 미술관과 갤러리들도 주요 작가들의 전시를 마련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인 함부르크 반호프 미술관은 브루스 나우먼의 대규모 전시를 열었고, 보로스 컬렉션과 호프만 컬렉션 등 개인 컬렉터들이 자신의 컬렉션을 공개했다. 베를린 시내는 곳곳에 미술 전시나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와 안내문이 나붙어 도시 전체가 거대한 미술 전시장으로 변한 것 같았다.

독일 정부는 베를린에 소재한 갤러리를 통해 갤러리와 작가에 대한 지원을 벌이고 있다. 베를린 화랑협회장 타먼씨는 "2004년부터 3년간 정부가 베를린의 10개 갤러리에 한국 키아프(KIAF)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경비의 50%를 지원해줬다"며 "이는 베를린의 갤러리와 소속 작가들이 자신을 한국에 알릴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베를린은 전시와 미술 관련 행사가 활발하게 이뤄질 뿐 아니라 작업실을 얻는 비용이 저렴해 작가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옛 동베를린 지역에는 빈집이 남아있어 집이나 작업실을 빌리기가 수월하다. 세계를 무대로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을 비롯해 영국 작가 더글러스 고든 등이 베를린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 일본 조각가 요타로 니와씨는 "베를린에선 다른 독일 지역에 비해 30% 정도 싸게 작업실을 얻을 수 있다"면서 "더구나 베를린시(市)에서 비용의 50%를 지원해줘 매월 100유로만 낸다"고 말했다. 한국 작가로 뒤셀도르프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이창원씨와 이세경씨는 "전에는 뒤셀도르프가 작가들이 선호하는 지역이었지만 이제는 베를린에서 미술 활동이 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옮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이 베를린으로 모여들고 있는 가운데 갤러리들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독일문화원의 보리스 아벨스씨는 "통독 직후 30여개에 머물렀던 갤러리 수가 현재 470개까지 늘어 베를린만큼 갤러리가 밀집한 도시도 없을 정도"라며 "비영리적 전시 공간인 대안공간도 늘어나고 있어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한 미술 현장이 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