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박정희 前대통령 묘역에 모인 '새마을 주역들'

지난 25일 오전 10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정문 '충성 분수대' 앞에 정장 차림의 노신사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조웅현(72)씨가 나타나자 노신사들이 "아이고 지도자님, 낙월도(전남 영광군)에서 몇 년 만에 나오신 겁니까"라며 반갑게 맞았다. 곽정현(77) 전 국회의원(11대·민정당)이 "역시 새마을 정신이 살아 있는 사람이야. 지난 몇 년간 풍랑 때문에 못 왔었는데 험한 길 뚫고 오니 너무 반갑네"라고 농담을 하자 웃음바다가 됐다.

이날 40년 전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부분 새마을운동 초기인 1970년대에 운동을 이끌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매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일 하루 전날인 25일이면 약속 없이도 현충원에 모인다. 이날도 전화 한 번 돌리지 않았지만 40여명이 모였다.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이 (생전 박 전 대통령에게) 술 한 잔 올리지 못했다"며 지난 1985년부터 박 전 대통령 서거 전날 모이기 시작한 게 벌써 26년째다.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을 교육하다 신문사 논설위원까지 했던 배철웅(71·서울)씨는 "'내가 대통령이 안 됐으면 새마을운동 지도자가 됐을 것'이라고 했던 박 전 대통령을 생각하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뭉쳤다"고 말했다.

이들의 '새마을' 사랑은 아직도 뜨겁다. 새마을운동 첫 성공 사례를 발표해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던 하사용(80)씨는 지금도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다. 때로 중국에서 새마을운동 강의를 하고 외국에서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오면 항상 강단에 선다.

새마을운동 지도자 육성에 힘썼던 이종균(75·서울)씨는 "새마을에서 익힌 근면과 '하면 된다' 정신을 기업에서 발휘해 초고속 승진을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새마을운동을 가르치는 새마을운동중앙회 중앙연수원에서 교수를 하다 퇴직해 비행기부품을 만드는 회사 회장까지 됐다.

이씨와 함께 새마을운동 지도자 교육을 했던 김기명(70·경기도 용인)씨는 오는 11월 몽골에 새마을운동을 전수하러 떠난다.

이날 제사상은 전국의 새마을 지도자들이 손수 재배해 가져온 농산물들로 차려졌다. 하사용씨는 지난 수십년간 한 해도 빼먹지 않고 했던 것처럼 수박 두 통을 짊어지고 왔고, 여성 새마을 지도자였던 민오인(76·서울)씨는 떡과 과일을 준비했다. 민씨는 '폐품 모아 한 가구 한 통장 만들기 운동'을 이끈 새마을운동 지도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