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A(16)군은 어렸을 때 부모님을 모두 병으로 잃고 3명의 형과 살고 있다. 스물다섯 큰형이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일하면서 벌어오는 적은 돈으로 어렵지만 꿋꿋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올해 2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오토바이 절도 및 무면허 운전에 가담하게 됐고 결국 붙잡혀 소년보호재판에 넘겨졌다. 소년재판이긴 하지만, '죄를 지어 법정에 섰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던 A군은 법원에서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재판받은 서울가정법원에서 주는 '희망 장학금' 지급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A군을 포함해 비행을 저질러 서울가정법원에서 재판을 받았거나, 부모가 이혼소송을 벌이는 등 서울가정법원과 '인연'을 맺은 청소년 42명에게 26일 '희망 장학금'이 지급됐다.
이 장학금은 일제강점기이던 1943년 익명의 기부자가 내놓은 경기도 구리시의 토지가 도로공사 때문에 수용되면서 법원이 받게 된 7억여원의 보상금이 종자돈이 됐다. 이날 가정법원은 42명에게 중학생은 1인당 30만원씩, 고등학생은 50만원씩 총 1800여만원을 지급했다.
A군은 "법원에서 나를 가능성이 있는 아이로 봐준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며 "이제는 더 이상 사고 안 치고 목표인 체육선생님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했다. 함께 장학금 수여식에 온 A군의 형(25)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교복값과 참고서가 걱정이었는데 한시름 덜게 됐다"며 웃었다.
학교 친구와 인터넷에서 말다툼을 벌이다가 고소당해 경찰 조사까지 받으며 곤욕을 치른 끝에 소년법정에 섰던 고교 1학년 B양도 이날 엄마와 함께 나와 장학금을 받았다. B양은 "처음 법원에 왔을 때는 나를 나무란 판사님이 너무 야속했는데, 지금은 얼떨떨하다"며 "꼭 내 희망인 보석디자이너가 돼서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가정법원은 앞으로 매년 토지수용보상금에서 나오는 이자 수익을 바탕으로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67년 만에 비로소 기부가 빛을 보게 됐지만, 가정법원에서 '키다리 아저씨'로 불리는 익명의 독지가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서울가정법원 김귀옥 부장판사는 "어디에 계시든 오늘 장학금 수여식을 보셨으면 참 흐뭇해하셨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