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이야기] 베트남 소녀, 한국 새아버지 덕에 치료받아

지난 26일 광주광역시 양림동 광주기독병원 3층 병실에서 링타해(30)씨가 딸 레티녹(10)의 체온을 재고 있었다. 체온계에 '37.2'라는 숫자가 찍히자 링타해씨가 남편 김영술(45)씨를 바라봤다. 김씨는 "수술받고 열이 나서 걱정이었는데 체온이 내려서 이제 조금 안심이다"라고 말했다.

김씨와 링타해씨는 지난해 2월 결혼했다. 김씨는 10년 전 부인과 이혼해 홀로 딸 셋을 키워왔고, 링타해씨는 6년 전 남편을 사고로 잃고 홀로 남매를 보살펴왔다. 김씨는 베트남 여성과 국제결혼을 한 지인의 소개로 링타해씨를 만났고, 지난해 6월 링타해씨를 한국에 데려왔다.

하지만 부부는 링타해씨가 전 남편과 낳은 남매는 베트남 외가에 두고 왔다. 한국말도 모르는 아이들을 데려오면 적응을 못할 것 같았고, 김씨도 딸 세 명을 키우기 빠듯한 형편이었기 때문이었다. 링타해씨는 한국에 와서도 베트남에 두고 온 딸이 늘 걱정이었다. 레티녹은 태어날 때 소아마비를 얻어 양쪽 다리 근육과 인대가 손상됐다고 한다. 발을 바닥에서 들어 올리지 못해서 걸을 때 발을 질질 끌며 걸어야 했다. 딸 때문에 시름이 많은 아내를 본 김씨는 레티녹을 한국에 데려와 수술을 시켜주기로 하고 지난 6월 레티녹을 초청했다. 그러나 200만원 정도 드는 수술비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씨는 공사장에서 막일하며 하루 7만~8만원을 벌었지만 올여름 비가 잦아 공치는 날이 많았다. 김씨는 "아이가 '빨리 베트남에 가고 싶다'고 조를 때나 아이를 혼자 두고 일을 갈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그러던 이달 초 부부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어린이재단을 통해 부부의 사연을 들은 익명의 후원자가 수술비를 대겠다고 나선 것이다. 후원자는 "재혼으로 얻은 외국의 딸까지 치료해주려는 부정(父情)이 눈물겹다"며 "아이에게 꼭 건강한 다리를 찾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레티녹은 25일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부부는 "치료가 끝나면 레티녹은 다시 베트남에 가야 하지만 한국에서 입은 은혜를 평생 기억하게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