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모든 것을 낯설게… 그만의 언어로 비튼 세상

"세상에 떠도는 소문으로 들은 것들과 그것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낙차(落差)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기록한 것이 이번 작업입니다."

시인·문학평론가로 활동하는 권혁웅(43) 한양여대 교수는 문단에서 '작명가(作名家)'로 통한다. 2000년대 들어 등장한 난해한 시를 쓰는 일군(一群)의 시인들을 명명한 '미래파(未來派)'는 공식 용어로 자리 잡았다.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무는 혼종(混種)적 글쓰기 실험은 '제4의 문학'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권씨는 3년여 만에 선보인 네 번째 시집 '소문들'(문학과지성사)에서도 타고난 작명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온 세상에 통용되는 어휘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비틀고 재가공한 시 68편에서 시인은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는 어휘들을 내세우며 세상을 보는 새로운 독법(讀法)을 제안한다.

수록작 '소문들-유파(流派)'는 무술 집단을 통칭하는 무협지의 '9파1방'과 유사하게 한국 사회의 빛과 그늘을 드러내는 10개 문파가 있다고 한다. '최대 유파는 공중(恐衆)인데, 혹자는 이를 공인중개사의 약자라고도 한다(…) 최근 정리해고와 의술의 발달로 그 수가 더욱 늘어 미래의 중원은 공중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참요까지 생겼다.'

시인은 공중과 함께 초징(楚澄·초딩), 덕후(德侯·오타쿠), 성어(聲漁·보이스피싱), 파파(婆跛·파파라치), 고세인(高世人·코시안) 등 한국의 문파들이 지닌 문제와 고민들을 짚어낸다. '살 곳을 잃은 사이(四夷)의 민초들이 낙양 주변에 몰려들어 월하촌을 이루었는데, 여기서 태어난 이들을 고세인이라 한다'라며 우리 사회의 과제로 등장한 아시아 출신 이민자 문제를 지적한다. 초등학생인 '초징'들은 '악플[惡筆·악필]이라 부르는 암기를 쓰는데, 이를 맞으면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칠공에서 피를 쏟는다.'

시인의 작명은 한자에 변화를 주며 지적인 해학미를 곁들인다. 타인을 괴롭히는 세태를 고발한 시 '권법'(拳法)에서 멱살은 순우리말이지만 멱살을 잡고 흔드는 것은 멱살권(覓殺拳)이 된다. 같은 시에서 '수지(手指)'는 '남에게 손가락질하기'이고, '저작'(詛嚼)은 '씹고 저주하기'이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토론문화도 비판한다. 남의 말을 무시하는 '개무시진'(開武示陣), 토론 상대를 "몇 학번이냐"며 서열로 누르는 '묘탁번진'(妙卓番陣), 뒷담화로 중상하는 '후다마진'(後多馬陣) 등이 있다.

사회적 관심을 나타낸 이들 작품과 달리 '야생동물 보호구역' 연작은 인간관계의 본질적 측면들을 주목한다. '적어도 한 번은 우리가 만났다-야생동물 보호구역 1'은 격렬한 만남으로 시작된 인연이 종종 초래하는 파국을 로드킬에 비유했다. '심야의 고속버스 앞유리는 평면도로 펼쳐놓은 로드킬이다/ 시속 100킬로로 나방과 사슴벌레, 하루살이 등속을 던져서 그린 액션페인팅이다/ 적어도 한 번은 우리가 만났다는 거다/(…)'

권혁웅의 시 세계에 대해 문학평론가 조강석은 "상식과 자명함의 베일이 덮어둔 토양 속으로 의미의 파종을 하는 행위"이며 "기호들과 의미들의 울창한 숲을 우리 눈앞에 펼쳐보인다"고 분석했다.